후루시쵸프의 개방정책 후 순수 리얼리즘 풍경화를 지향하는 화가들이 드디어 숨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부합하는 그림만을 그려야 했던 리얼리즘 풍경화 작가들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혁명 이전의 무드 풍경화의 장점을 잘 살린 그림들을 다시 그려내기 시작했고, 그 선두에 유리 쿠가츠, 발렌티 시도로프, 유리 쿠가츠의 아들인 미하일 쿠가츠 등의 빛나는 활동이 있었다. 그들이 빚어내는 서정적 풍경화는 한 편의 시를 보는 듯 아름답다. 그림 속에 노래가 있고 이야기가 있으며 따뜻한 감성이 흐른다. 전통을 바탕으로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기대반 우려반’ 속에 지난 2일 취임했다. 오 장관은 외교부에서 국제기구와 개발협력 등의 업무를 주로 맡아온 대표적인 유엔통으로 꼽힌다.중소벤처기업부는 770만 중소기업, 소상공인, 벤처·스타트업의 현안을 두루 다루는 기관이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오 장관은 우리 경제의 뿌리이자 중심인 중소기업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소상공인을 대변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외교 분야의 전문가인 오 장관이 기업 경영은 물론 중기부 업무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오
■ 미하일 시바노프 '결혼 계약의 축하'-농민의 결혼식농민이었다. 대부분이 농노의 신분으로 지주에 소속되어 노동을 제공하고 또 국가에는 세금을 납부하고 병역 의무를 지며 살았다. 그 농노의 삶은 너무도 피폐하여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배불리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지주의 허가 없이 여행을 할 수도,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다.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의 뿌리이기도 한 1700년대 참혹한 현실, 그림은 그런 헐벗고 굶주린 농노들에게도 인간으로서 성스런 의식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이 그림의 배경이 된 지역은 러
슬픔이 쓰나미일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을 다독인다. 바스네쵸프의 를 보면 슬픔이 누그러진다.절망에 빠진 어깨에 내 슬픔을 올리고 몇 번을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돌덩이가 되어 버린 그녀의 헐벗은 발을 어루만지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맥없이 흐느끼는 알료누쉬카의 눈물 한 방울이 날 정화시킨다.살다 보면, 말하려니 우습고 삭히자니 무거운 일들이 어디 한두 개인가?그럴 때마다 를 보며 혼자만의 카타르시스를 찾는다. 그림 속 연못은 고아인 알료누쉬카가 힘들 때마다 혼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지 마라, 성내지 마라!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기쁨의 날이 옴을 믿어라.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워지는 것을 -알렉산드르 푸쉬킨그림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시대가 만들어낸 슬픈 역사!! 화폭에 담긴 인간사가 절절하다. 19세기 러시아 화가들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그림은 가치가 없다’고 단언하고 민중들의 눈과 귀가 되어 러시아의 아픈 시대상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는다. 그렇게 그림의 힘으로 소설가보다 더 소설가같은 스토리텔러가 되
프랑스어인 '똘레랑스(tolérance)'는 관용이나 너그러움이라는 단어 해석에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의 사회적 가치를 말한다. 1995년 파리의 망명객 홍세화 씨가 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회적 반향을 불렀다. 똘레랑스는 다름을 인정하는 정신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이 중요하다면 상대방의 그것도 인정하는 것이 기본 정신이다.똘레랑스 사회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헐뜯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개인의 행동이나 사고가 직접
현 정부의 국민소통방식인 출근길 문답이 돌연 중단됐다. 대통령과 언론매체들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답답해서 2000년 출판된 미국의 전설적인 백악관 출입기자 헬렌 토머스의 취재기 ‘백악관의 맨 앞줄에서’를 책꽂이에서 꺼내 다시 읽었다. 뺄 것도 덧붙일 것도 없겠다. 헬렌의 경험담이 녹아 있는 다음의 인용문들을 따라 가 보자. 해법이 있을 것이다.“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어야 하는 기자이지만 외교적인 면에서는 품위 있게 보이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기자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면 누구든지 품위를 내팽개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것이다.
디딤돌은 디디고 다닐 수 있게 드문드문 놓은 평평한 돌을 말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바탕이 되는 것을 비유로 이르는 말로 쓰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온갖 어려움을 만납니다. 생노병사라는 라이프 사이클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정입니다. 역경을 만날 때 그것을 디딤돌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걸림돌이 되어 넘어질 것인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 걱정과 근심도 없이 그저 평탄하게 인생을 살아간다면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장애물을 만나면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절호의 기회로
한편, 이동파의 풍속화와 함께 또 하나의 산맥으로 발전하던 무드 풍경화는 이동파의 해체를 맞아 예술적 변화를 거듭한다. 1894년 레핀 등 이동파 핵심 화가들이 미술 아카데미 교수로 취임하고 미술계의 주류가 예술 아카데미로 넘어가면서 이동파는 해체된다. 19세기 러시아 미술의 핵심으로서 이동파는 세계 어느 미술사에서도 볼수 없는 예술적 쾌거를 이뤄내지만 1923년 전시가 마지막이었다.당시 러시아 혁명과 더불어 미술계 또한 아방가르드라는 예술적 변화를 겪는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1915년에서 1932년에 일어난 신원시주의, 광선주의
러시아는 샤갈, 말레비치, 칸딘스키의 나라이며, 20세기 초반 세계 모더니즘 생성에 뿌리 역할을 했다. 19~20세기에 걸쳐 폭발적인 예술적 성과를 이룬 러시아 미술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이동파의 활동을 들 수 있다.1864년 이반 크람스코이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이동파는, 지배층에 저항하는 그리고 러시아 현실을 고발하는 사실주의적 화풍을 기치로 내걸고 1871년부터 러시아 전역을 돌며 순회 전시회를 열었다. 예술의 현실 참여를 중요시하였으며, 아카데미 화파에서 혜택받지 못하는 많은 작가들이 이동파 전시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수박이 제철을 맞았다. 7~8월이 수확 시기다.수박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수박서리다. 먹을 것이 흔하지 않던 시대에 수박서리는 허기를 채우고 재미도 느낄 수 있었던 도둑 놀이였다. 수박을 서리하던 아이들이 밭 주인에게 들켜 쫓고 쫓기는 한밤 추격전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풍경이다.수박은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각지에 퍼진 것이 약 500년 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연산군일기’에 수박 재배에 대한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밭은 물론 하우스를 통한 연중 재배가 가능한 과채이다. 씨 없는 수박, 노랑 수박 등
머리도 아니고, 심장도 아니고, 다리 근육도 아니고, 바로 우리 몸의 중심은 가장 아픈 곳이다. 즐거움은 흩어지고 이완되는 기운인데 반해, 괴로움과 통증은 모이고 집중되는 기운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아름다워도, 공부를 잘해도, 키가 커도, 모두 다 아프지 않을 때 일이다. 우리 생존 메커니즘은 아픈 곳에 온 신경이 집중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곳부터 해결하라는 생존본능 센터의 신호이기 때문이다.‘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산다’고 했던 것이 얼마 전의 이야기인데 이제는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산다’고 말해도 그리 놀라운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마치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다른 사람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 올라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외모를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은 무엇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까요? 만약 자신의 내면을 거
부조리(不條理, absurdity)는 이치에 맞지 않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의 반대말인 조리(條理)는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세상의 모든 사람이나 일이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불합리하고 불공평합니다. 부조리한 세상을 바라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부조리한 세상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세
자기모순(自己矛盾, self-contradiction)이란 스스로의 생각이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말합니다. 자기모순이 심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기만에 빠져들게 됩니다. 인류 역사를 둘러보면 인간은 어느 누구도 이런 자기모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에 따라 심하기도 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약하기도 합니다. 실상 자기 자신도 자기모순에 빠져들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화장을 하고 치장을 하며 변장까지 합니다.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도 자기 합리화
선거때만 되면, 예외 없이 거두절미하고 퍼뜨리는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민주주의를 시작한 지도 꽤 되었고 경험도 어느 정도 쌓여 이제는 좀 더 성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요원한듯싶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퇴보하는 느낌마저 든다. 단세포적인 마타도어를 바라보는 자체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육체의 결함일까? 사회의 병리일까?앞뒤 전후 사정 이야기를 싹둑 잘라버리는 것을 거두절미(去頭截尾)라고 한다. 진실과 관계없는 사족(蛇足)을 줄인다면 긍정적일 수 있지만, 앞뒤 상황을 무조건 잘라 버리고 단어 몇 개로 구성된 단문만을 의도적
가업(家業)이란 대를 이어 물려받은 집안의 생업을 말합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제로 포인트(zero point)에서 우리는 기적같이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청년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 직장에 몸담아 일을 했고 가업을 이어받는 자식들은 가뭄에 콩 나듯 했습니다. 반면에 과거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웃나라들을 침략하고 괴롭혔던 일본은 비록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았지만 외침을 별로 받지 않은 결과 가업이 200년 또는 300년 이상 이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꿈이 현실이 되면서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해 왔습니다. 인류의 꿈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고 행복하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아무리 놀랄만한 과학 기술이 나와도 그것이 결국 사람에게 이롭지 못하면 조만간 소멸되고 맙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회사명을 메타(Meta)로 바꿨습니다. 메타의 설립자이며 CEO인 마크 저커버거(Mark Zuckerberg)는 메타가 미래 메타버스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포부를 야심만만하게 만천하에 공표했습니다. 그는 회사명을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꾼 이유를 사람과의 연결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영어
[소셜타임스=정은상 기자]과거에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단순했습니다. 대부분 실명과 프로필 사진을 공개하면서 소통하는 정도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물론 익명이 없지는 않았지만 실명이 아니면 어쩐지 좀 거리감이 느껴지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지났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돕기 위해 출현하고 급기야 메타버스라고 하는 아바타로 살아가는 디지털 세상이 나왔습니다. MZ세대는 아주 어려서부터 인터넷 게임을 시작으로 이제는 모바일 게임까지 게임 속 세상을 현실과 병행해서 살아갑니다. 30년 전만 해도 게임 시장이 이토록 크게
은퇴(隱退, retirement)란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내는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은퇴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뒤로 물러나 숨어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에 이는 맞지 않습니다. 사전부터 고쳐야 합니다. 영어식으로는 새로운 출발입니다. 100세 시대를 맞은 지금 조용히 물러나 유유자적하며 지내면 곤란합니다. 평균 수명이 60세가 되지 않았을 때는 열심히 일을 하다가 때가 되면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산업화와 대가족 시대에는 은퇴를 해도 괜찮았습니다. 여러 명의 자녀들이 열심히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