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 많이 알면 매사 좋을 것 같지만 너무 많이 알면 한 가지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때로는 너무 많이 알아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머리 회전이 빠르고 논리가 분명한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겉으로는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생각은 벌써 다른 곳에 가 있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독서도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는다. 혹여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그럴 수도 있다. 책임 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을 많이 하지만 활자로 써 두는 것은 위험하
인격은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말한다. 인격은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인격으로 나뉜다. 우리는 개인으로 있을 때와 집단으로 사회 속에서 활동할 때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물론 비슷한 모습으로 보여질 때도 있지만 반드시 개인의 인격이 사회적 인격과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모방하며 살아간다. 집단 속에서 활동할 때 무의식적으로 남이 하는 말과 행동을 흉내 낸다. 생각도 닮고 남들이 믿는 것도 여과 없이 믿어버린다. 집단의 분위기에 쉽게 휩싸인다. 때로는 남들처럼 위험도 감수하고 비이성적인 행동도 따라 한다. 이
소통을 할 때 우리는 주로 언어적 신호 즉, 말을 주고 받기만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비언어적 신호인 손짓, 몸짓, 표정, 제스처, 느낌 등 소위 바디랭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혼과 양심이 있는 인간은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서로의 눈빛 하나로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생활을 비교적 잘 하는 사람들은 이런 비언어적 소통에 능하다. 그에 비하면 비언어적 소통을 등한시하고 말을 통한 직접 소통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뭔가 서툴고 때로는 오해와 착각도 자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한 프레임fra
[소셜타임스=정은상 기자]행복하기 위해서는 거절의 기술이 필요하다. 바다처럼 모든 것을 모두 받아 주면 더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거절한다는 게 뭔가? 원치 않는 부름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신년이 되면 수많은 카톡과 문자가 날아온다. 모두에게 응답하지 않으면 뭔가 꺼림칙하고 불안한가? 그건 거절의 기술이 몸에 배지 않아서 그렇다. 모든 상황에서 거절하지 못하거나 응대하지 못한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평소 돈독한 관계를 잘 유지한다면 비록 일일이 피드백을
오토매틱은 워드프레스wordpress 창시자 매트 뮬렌웨그Matt Mullenweg가 2006년에 만든 회사다. 이 회사는 전 세계 50개 국에 흩어져 500여명이 일한다. 그런데 이들은 대면회의나 화상회의가 없다. 본사의 개념도 없다. 사무실도 따로 없이 많은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한다. 이 회사의 직원 채용은 이메일을 통한 지원 서류로 이루어진다. 이메일로 첨부된 서류, 양식, 글꼴, 서체 등을 꼼꼼히 살핀다. 결정적인 당락 여부는 글을 명확하게 쓸 줄 아느냐이다. 디지털 시대에 이런 채용 방법은 더욱 돋보인다. 글이 명확하면 사
인간은 어디까지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며 착각이다. 비록 겉으로 그렇게 보일지라도 인간은 철저하게 이성보다는 감성에 이끌려 행동한다. 흔히 우리는 다른 사람의 표리부동 즉,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다른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비판하고 질타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표리부동한 말과 행동을 하곤한다. 아이러니한 일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은 누구나 두 자아가 항상 충돌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본능에 이끌리어 움직이는 자아와 가능하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자아
줌zoom이라고 하면 흔히 우리는 카메라로 피사체를 축소하거나 확대하는 줌인zoom-in 또는 줌아웃zoom-out을 떠올리지만 여기서 말하는 줌zoom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변화가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세계적인 경영구루이며 베스트셀러 저자인 세스 고딘Seth Godin이 그의 저서 에서 밝힌바 있다. 변화가 일상화되어 있는 기업은 줌머zoomer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경쟁우위를 극적으로 향상시켜 경쟁자를 추월하고 질주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
방송, 신문, TV, 영화, 잡지 등의 매스 미디어mass media는 저물고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시대가 활짝 열렸다. 꽤 오랫동안 승승장구하며 영역을 넓혀 왔던 매스 미디어가 12년 전 스마트폰의 출현과 함께 사정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매스 미디어는 고용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소셜 미디어는 자영업 사회와 관련이 깊다. 더 이상 매스 미디어에서 개인의 가치와 부를 창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스 미디어에 목을 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요리 관련 지상파 방송을 녹화를 하기 위해 어느 자그마한
무슨 일을 하든지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런 다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면 된다. 하지만 흔히 Why가 빠지고 What과 How를 우선 순위에 두곤 한다. 그 이유는 What과 How는 당장 눈에 보이지만 Why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Why지만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따라 이것은 나중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데 결정적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우리는 어릴적부터 생각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못하다. 그저 보고 듣고 암
글을 쓰는 이에게 고객은 독자이다. 강연하는 이에게 고객은 청중이다. 물건을 파는 이에게 고객은 구매자다. 고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헛다리를 짚게 된다. 고객을 먼저 파악하고 준비하고 다가가라. 고객이 무엇을 보고 듣고 싶어하는지 알면 공감과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글을 쓴다면 지속적으로 글을 읽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얼마나 글쓴이에게 공감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필자는 10년이 넘도록 창직칼럼을 실은 주간 뉴스레터를 발행하는데 이것은 독자의 피드백을 파악하는데 아주 좋은 툴이다. 가끔씩 만나는 독자들이 한마디씩 건네
컴퓨터가 보급되고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손글씨가 사라져 가고 있다. 손글씨는 문화다. 그 문화가 없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다시 손글씨가 돌아오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속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안겨주었다. 개발새발 보기 싫은 글씨를 다양한 폰트로 예쁘게 바꿔놓았다. 그러나 동시에 손글씨를 쓰기 위해 연필을 깎고 노트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서 생각하며 글 쓰는 낭만과 멋을 앗아가 버렸다. 인지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필경사들과 교사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언어와 운동 신경망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개념설계 concept design란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실행 implementation은 그 다음 단계이다. 건축을 할 때 개념설계가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설계를 해야하거나 실행 단계에서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창직은 개념설계에 해당한다. 평생직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창직을 하고 난 다음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패스트팔로잉fast following 작전이 통했다. 다시 말하면 개념설계를 누가 했던지 상관없이 앞선 기업이나 기술을 빨리 따라잡기만 하면 대량생산의 실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앞선 기술을 체화해서 자신의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나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먹고 입고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얼핏 극단적인 표현 같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로 자신을 설명하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지금 어떤 포지션에 있다는 말로 그게 바로 자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며 지금이나 과거가 아닌 미래의 자신을 기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 어떤 설명도 우리는 맞다거나
디아밸은 필자가 만든 용어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밸런싱을 뜻한다. 최근 워라밸이 유행하고 있다. 워킹과 라이프 즉, 일과 삶의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다는 말인데 그동안 우리는 일에 너무 함몰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삶의 질도 생각하며 살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는 매우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디지털을 건너 스마트 세상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마치 아날로그는 진부하고 뒤떨어진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리가 평생 추구하는 행복은 디지털보다는 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고 드러내기 싫어한다. 그래서 화장을 하고 업적을 과시하고 남들 앞에서는 거창하게 자신을 소개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 힘들고 심지어 등을 돌려버리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진솔하게 자신의 연약함을 낱낱이 보여줄 때 상대방이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 연약함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분이 바로 필자의 사부인 고정욱 작가이다. 그는 소아마비로 인해 두 다리를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288권의 책을 쓰고 일년에 300회나 전국을 휘젓고 다니며 강연
회사 인간company man이란 용어가 있다. 회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회사가 기대하는 모습을 갖추려고 애쓰며 회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을 말한다. 그런데 더 이상 이런 회사 인간은 없어진다. 그건 한번 회사에 입사하면 평생직장이 된다고 믿었던 70,80년대 전설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과거 회사 인간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회사에 걸었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에는 목숨을 걸어야 했고 회사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냈다. 군대식 명령과 복종만 존재했던 회사 인간의 삶에서 개인의 삶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가정도 회
디지털 원주민은 1980년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를 포함한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자란 세대이다. 이에 반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시대가 바뀌면서 후천적으로 디지털 환경에 적응해 갈 수 밖에 없는 기성세대를 일컬어 디지털 이민자라고 부른다. 이것은 미국의 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Mark Prensky가 자신의 논문 에서 가져온 용어이다. 당신은 디지털 원주민인가 아니면 이민자인가. 이민자가 원주민처럼 그 곳에 정착해서 살아가려면 무수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우선 용어가 낯설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무아지경에 이르게 되고 에너지를 받게 된다. 아무리 피곤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에너지가 방전되지 않고 오히려 넘쳐난다. 몰입은 우리를 무아의 경지로 밀어 넣는다. 지금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건 나이와 상관없고 성별과도 무관하다. 핵심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최상의 경험을 이루는 핵심 요소는 무슨 활동을 하든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뚜렷한 목적이 없이 시작한 일일지라도 활동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몰입하게 되면 에너지가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젠더gender란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의 구분인 섹스sex와 달리 개인이 속한 문화 혹은 사회와 관련된 성적 자기정체성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실상 다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존 그레이의 저서 는 책을 읽어보지 않고도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지 짐작하게 해준다. 또한 앨런 피즈와 바바라 피즈의 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역시 젠더의 차이를 알려준다. 달라도 너무 다른 젠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지혜롭
스마트폰이 사라졌다. 우리가 하루 종일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이제 더 이상 폰phone이 아니다. 게임기도 아니며 문자를 주고 받거나 사진 촬영을 하는 정도의 물건이 아니다. 그건 매직 램프다. 아직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적절한 용어를 찾지 못해 여전히 스마트폰이라 부르지만 폰 만이 아닌 온갖 다양하고 놀라운 기능을 가진지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면서 자신은 고고하게 그 따위 신종 기기에 현혹되지 않는다고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