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어.

너와 함께 다니면 사람들이 부러워했지. 너는 블랙을 좋아했고, 늘 윤기가 흘렀고, 몸도 튼튼해 남들보다 항상 눈에 띄었지. 남들은 블랙보다는 갈색을 좋아하고 몸이 튼실하지 못해 생기가 없고 피부는 까칠했어. 친구들도 많은 건 아니었어.

기억하니. 언젠가 시장에 갔을 때. 상인 아주머니들이 너를 엄청 부러워했잖아. 튼실한 몸에 오리지널 블랙 옷을 입고 마치 참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넘쳐났고. 특히 콩나물 가게 아주머니는 손을 갖다 대며 너를 쓰다듬기까지 했어. 덕분에 나는 우쭐했지.

그런데 넌 어느 날부터 완전히 변했어. 블랙을 버리고 갑자기 화이트를 좋아하기 시작한 거야. 처음에는 배신감에 떨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덤덤해지더라고. 하는 수없이 난 갈색을 권했지. 물론 남들은 네 마음을 뺏은 화이트 뿐만 아니라 갈색이나 노랑 심지어 파랑 계통의 색상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어. 하지만 난 네가 블랙을 좋아하던 초심을 끝까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어.

너도 잘 알잖아. 세월이 흐른다고 너마저 변하면 내가 너무 힘들어진다는걸. 남들이 초심을 버린다고 너까지 그러는 건 두고 볼 수가 없었지. 결국 나의 바람과는 달리 너는 화이트로 변했어. 그렇다고 너와 이별할 수는 없잖아. 언젠가는 이별하겠지만.

난 너를 많이 사랑했거든. 네가 비에 흠뻑 젖었을 땐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까 정성스레 물기를 닦아 주었고, 가끔 예쁜핀 이나 향수도 선물했지. 매일 어루만지며 토닥여주기도 했어. 잠잘 때만 너한테 관심을 주지 않았을 뿐이야. 그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그렇지만 나와 너의 운명이 그런 걸 어쩌겠어. 우리 사랑은 여기까지였니.

초심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난 너의 변심으로 인해 정말 많이 힘들어. 네가 화이트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난 그냥 내버려 뒀었지. 주변 사람들은 네가 다시 블랙을 좋아할 수 있게 조치를 취하라고 충고했어. 고민했지. 그러다 결심했지. 네가 끝까지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너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조금씩 살살 타이르다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을 땐 전문가들한테 맡겼지. 제발 화이트 사랑만을 끝내게 해달라고…. 부탁했어.

그런데 넌 참 이상해. 남들은 모두 친환경이나 천연을 좋아하는데 넌 왜 화학제품을 최고라고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비싼 천연 재료를 주면 시간만 끌다가 잘 먹지 않고 심통을 부리고, 화학제품을 입혀주면 제대로 먹히더라고. 희한한 일이야.

이제 나도 힘들어. 너는 점점 더 화이트를 좋아하고 그 많은 주변 친구들도 화이트를 좋아하게 만들잖아. 너는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아닌데 튼튼하던 몸이 단백질이 빠지고 체중은 줄어들고 있어. 피부는 또 어떠니. 갈수록 탄력이 떨어져 까칠해지고 있어.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긴 틀린 것 같아.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너의 화이트 사랑은 멈출 수 없더라도 밝은 표정으로 윤기만은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키도 너무 빨리 자라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그나마 남아 있는 블랙 친구들을 화이트로 만들지 말고, 화이트 친구들이라도 하나둘씩 떠나보내지 말아달라고. 내 욕심일까.

너한테 부탁이 있어. 날마다 널 돌볼 수가 없어. 일에 쫒기다보니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 이틀에 한 번씩은 깨끗이 씻어주고 영양제도 듬뿍 발라줄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네가 좋아하지는 않지만 블랙 옷을 입혀주도록 할게. 그렇지만 네가 피곤하다고 남들처럼 마사지 같은 건 해줄 수 없어. 보채지 마. 나도 피곤해.

난 지금도 네가 초심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어. 블랙을 버리고 화이트로 변한 것도 모자라 이젠 빛의 속도를 좋아하니. 제발 자라는 속도만이라도 늦춰줘. 천천히... 1주일에 한 번씩 염색약 꺼내는 게 너무 힘들거든.

 

저작권자 © 소셜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