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은의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이야기]
[김희은의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이야기]
  • 김희은
  • 승인 2018.12.31 20:2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이 절망적일 때가 있다. 잘 살 수 있을 거란 희망만 가지고 시작한 러시아에서의 처음이 그러했다. 읽지도 쓰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내가 낯선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지쳐가던 내게 러시아 그림이 소곤소곤 말을 걸어왔다.

'삶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다고, 삶의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야로센코의 이 그림이 내게 긍정과 희망을 보여주며 삶에 대한 겸손을 얘기해 주었다.

니콜라이 야로센코 '삶은 어디에나' 1888년. 트레챠코프 미술관 소장.시베리아로 유형 떠나는 죄수 수송 열차가 간이역에서 잠깐 정착하는 동안 기차 창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즐기며 빵조각을 비둘기에게 나눠 주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 제목처럼 삶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거다.
니콜라이 야로센코 '삶은 어디에나' 1888년. 트레챠코프 미술관 소장. 시베리아로 유형 떠나는 죄수 수송 열차가 간이역에서 잠깐 정착하는 동안 기차 창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즐기며 빵조각을 비둘기에게 나눠 주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 제목처럼 삶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거다.

톨스토이는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사람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 존재하는 사랑 때문에 행복해진다. 그러므로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니콜라이 야로센코(러시아 화가, 1846-1898)는 이 소설에 깊은 감흥을 받는다. 그리고

<삶은 어디에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정의를 화폭에 담고자 한다.

러시아 차르에 반대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정치범들의 열차 안에도 삶이 생명이 있음을, 형극의 수형 길 앞에서도 잠깐의 햇볕을 즐기며 새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눠줄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을, 많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 아님을, 빵 조각을 나눠주는 고사리 손을 통해 일깨워준다. 화려하지 않아도 빛날 수 있고 가난할지라도 풍요로운 영혼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엄마의 품에 안겨 미소 짓는 아기의 천진한 얼굴에서 우리는 순수의 절대 정의를 읽을 수 있으며, 혹한의 현실 앞에 굴하지 않고 찰나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혁명가들의 풍요로운 영혼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찬 역사를 점칠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삶은 어디에서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말한다. 그리고 삶에 겸손하고 진지 해 지며 작은 사랑일지라도 실천할 것을 그림이 가르친다.

삶에 허덕이지 말고 현실에 발을 디디고 겸손하게 살아가라, 어떤 척박한 상황에도 삶은 존재하는 것이니 세상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라, 그림이 가르쳐 주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은 화려함에 있지 않고 진솔한 모습으로 현실을 대면하며 작은 실천을 이뤄갈 때 빛을 발한다 일러준다.

지금의 절망이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밑거름이란 것을 느끼게 해 준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 인생의 새로운 출발 선상에서 삶의 기본 자세를 가르쳐 준 소중한 그림이다. 그렇게 러시아 그림과의 첫만남이 시작되었다.

바실리 페로프 '도스토옙스키 초상화' (1872년). 트레챠코프 미술관 소장
바실리 페로프 '도스토옙스키 초상화' (1872년). 트레챠코프 미술관 소장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는 완전하고 새롭고 충만한 느낌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 느낌은 발작처럼 그를 엄습했다. 하나의 불꽃이 내부에서 타오르듯 한번에 그의 마음은 녹아 내렸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서 있던 모습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센나야 광장 한 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는 달콤한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더러운 땅에 입을 맞추었다>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를 처음 만난 그날, 나도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되어 그렇게 러시아 그림과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랑은 풍요로운 아름다움이라 표현될 수 있으며, 영원히 이별하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 20년가까이 내 삶의 터전이 되어준 러시아 그림 사랑이다

 

▲ 김희은 프로필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인숙 2019-01-11 14:06:51
러시아에 같이 사는 일인으로 너무나 공감이 가고 힘이 되는 글입니다. 미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지금 미지에 대한 두려움보다 삶은 어디에나 존재함에 대한 경외심으로 희망으로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안으로 밖으로 다 예쁘신 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