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해야 해. 살이 찌는 건 의지력 부족이지.”

“뚱뚱하다는 건 죄악이야, 쯧쯧.”

“저 출렁이는 살들로 울렁증이 생길 거야.”

요즘 사람들은 뚱뚱한 여인을 보면 이렇게 한 마디씩 한다. 옛날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살찐 여인이 미의 최고 기준이었다. 양귀비도, 클레오파트라도, 비너스도 모두 모두 풍성한 미를 자랑했다. 하지만 현대 미인은 아주 깡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리는 젓가락처럼 길고 가늘어야 하고 허벅지는 초등학교 이후 한 번도 살이 올라본 적 없는 것처럼 말라야 한단다. 그러면서 개미허리에 가슴은 커야 하고 엉덩이는 또 통통해야 한다. 모두가 그런 베이글녀가 되기 위해 빼려고 먹고, 빼려고 뛰고, 그리고 키우려고 수술대에 오른다

시대적 미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실 미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은 시대별, 지역별로 존재한다. 그래서 아름다움에 감동받고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그때그때 변하는 거다. 그럼 풍성하게 살찐 여인을 최고의 비너스로 칭송한 러시아 작가의 미적 기준은 무엇일까?

〈러시아 미녀〉 1915년, 보리스 쿠스토디예프(1878-1927), 캔버스에 유채, 141×185㎝,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보리스 쿠스토디예프는 〈러시아 미녀〉, 〈상인의 아내〉, 〈러시아 비너스〉를 통해 러시아인들이 생각하는 미인의 표상 ‘민중적 미의 이상형’을 제시한다. 선홍빛 뺨에 푸른 눈, 붉은 입술, 황금빛 머릿결, 윤기나는 피부,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고 풍성한 몸매. 그의 손에 태어난 미녀들은 기근에 시달려 못 먹고 못 입고 퀭하게 말라비틀어진 그런 여인이 아니라 말랑거리고 부드럽고 건강하게 빛나는 풍성한 여인들이다. 생명력이 넘친다. 러시아 비너스의 저 상쾌하고 건강한 미소를 보라. 온몸이 싱그러워지는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미녀들이 주는 긍정 메시지 아닐까?

〈상인의 아내〉 1918년, 보리스 쿠스토디예프(1878-1927), 캔버스에 유채, 120×120㎝ ,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쿠스토디예프는 러시아 대표 민속화가로 주로 러시아 전통 행사나 명절 풍습, 러시아 문양 등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린다. 〈러시아 미녀〉에서 화려한 색깔의 꽃무늬 벽지와 침대는 러시아 전통 문양을 재현한 것이며, 〈상인의 아내〉에선 사모바르(러시아 차주전자)를 그려 넣어 전통 식기를 보여주고 〈러시아 비너스〉에선 러시아 전통 사우나 바냐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그런 전통소품 속에 어우러진 러시아적 미적 기준이라 더욱 그 의미를 발한다.

〈러시아 비너스〉 1925-1926년, 보리스 쿠스토디예프(1878-1927), 캔버스에 유채, 200×175㎝, 러시아 박물관 소장, 상트페테르부르크.

물론 세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볼셰비키 혁명 후 내전을 거치고 스탈린이 당을 장악할 즈음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러시아의 식량문제는 아주 심각했다. 심한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때다. 그런 현실 앞에 풍만하게 살찐 여인을 러시아 미녀라 칭한 쿠스토디예프의 그림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쿠스토디예프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발맞춰 가냘프고 여린 귀족적 아름다움은 떨쳐버리고 당당하고 풍성한 미를 가진 생활력 있는 민중적 여인상을 미래를 위해 제시한 거다.

혁명의 시대가 요구하는 건강한 여인상

이렇게 쿠스토디예프가 엮어낸 주관적 미의 기준이 ‘아름답다, 합리적이다’에 과감히 찬성표를 던진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의 미인은 어떤 여인상이어야 할까? 아주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1878-1927), 민속화가이며 무대 디자이너이고 삽화가이다. 러시아 전통 축제, 러시아 전통 문양 등을 주로 그렸으며 러시아에 대한 무한 애정을 그림에 표현했다. 〈아침〉 〈부활절 인사〉 〈마슬레니차 화요일〉 등의 작품이 있다.

 

▲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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