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마르가리타’, 1909년, 니코 피로스마니(1860-1918), 캔버스에 유채, 117x94cm, 조지아 국립 미술관, 트빌리시.
‘여배우 마르가리타’, 1909년, 니코 피로스마니(1860-1918), 캔버스에 유채, 117x94cm, 조지아 국립 미술관, 트빌리시.

사랑의 빛깔로 단장한 여배우 마르가리타

니코 피로스마니라는 아주 가난한 조지아 화가가 살았다. 원시주의풍의 그림을 주로 그렸는데 살아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한 작가다. 하지만 현재에 와서 조지아 최고의 화가로서, 앙리 루소를 버금가는 화가라 칭송 받고 있다.

상점의 간판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화가는 평소 짝사랑하던 프랑스 출신의 아름다운 여배우 마르가리타가 자신의 마을에 공연을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전 재산과 그림을 팔아 백만 송이 장미를 사고, 그녀가 묵는 호텔 앞 광장을 온통 꽃밭으로 만들어 흠모의 마음을 표현한다. 사랑을 고백할 때 꽃이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러시아서도 사랑 고백에는 꽃이 필수다. 꽃송이는 홀수로 준비 하는데, 꽃을 받는 여인이 한 송이 꽃이 되어 짝을 맞춘다고 해서 그렇게 한단다. 참으로 낭만적이다. 아마 피로스마니도 그런 러시아 풍습을 따라 당연히 꽃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사랑 표현에 감동한 마르가리타는 잠시 그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은 떠나가 버린다.

위 그림에 어여쁜 <배우 마르가리타>가 있다. 상세 묘사를 생략하고 비슷한 톤의 색채로 그림을 단순화시키긴 했지만 화폭에서 품어지는 마르가리타는 예쁜 원피스에 아름다운 꽃을 들고, 한 남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동화에 나오는 공주처럼 신비롭다. 푸른색으로 통일된 그림이지만 차갑지 않다. 오히려 사랑이 묻어 나는 듯하다.

금세 시들어 버리는 꽃만큼이나 허무한 사랑이야기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정열을 가진 화가, 피로스마니는 그림처럼 순수한 사람일거다. 사실 사랑이란 거, 자신의 마음을 확신하기도, 고백하기도,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책임지기도 주저하는 게 현대인의 사랑법 아닌가.

이 글을 읽으며 ‘에이 뭐야? 바보짓이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의 정열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줄 아는 순수 또한 가치 있다는 것을 피로스마니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메마른 현대인의 가슴에 잠시나마 단비를 주는 따뜻함일 수도 있다.

그렇게 피로스마니의 사랑이야기는 러시아 로망스로 다시 태어난다. 제목은 <백만 송이 장미>.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사랑의 열병을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가사를 쓰고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노래한다. 또한 그의 짧지만 허무했던 사랑 이야기를 심수봉이 불러 우리나라에서도 국민가요가 된 이 노래는 시리고도 슬픈 화가의 순수한 순정을 표현한 노래이다.

아름다운 가사에 달콤한 선율을 붙여 꿈꾸듯 노래하는 백만송이 장미, 피로스마니의 이 그림을 들여다 보며 듣노라면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알싸한 느낌이 떠올라 미소 짓게 된다. 아래에 노래 가사를 적어본다.

 

니코 피로스마니(1860-1918)

그루지아의 대표 화가로 원시주의 프리미티즘의 대가이다. 주요 작품으로 <잡역부>(1909), <당나귀를 탄 치료사>, <붉은 셔츠를 입은 어부>(1908) 등이 있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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