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을 시키기 전 진흙 마사지를 해 주었다. 병아리도 못 만지던 내가 코끼리와 친구가 되다니. 여행이 아니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나의 변화.
목욕을 시키기 전 진흙 마사지를 해 주었다. 병아리도 못 만지던 내가 코끼리와 친구가 되다니. 여행이 아니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나의 변화.

"세계 여행이 왜 하고 싶었어?"

여행을 떠나기 전,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내가 정말 세계 여행이 왜 하고 싶었을까?

'왜 떠났느냐.'는 질문에는 '하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러면 왜 하고 싶었느냐.'는 질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정말 어느 날 세계지도를 보다가 문득 살면서 한 번쯤은 세계 여행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떠났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왜 하고 싶었을까?

여행을 하면서 나의 생각과 마음에 집중을 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며 나를 알아가고 있다. 이것이 떠난 이유라고 한다면 하고 싶었던 혹은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를 알게 해 준 첫 번째 사건을 태국에서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 연극배우를 하며 제작 PD를 시작하게 된 나는 다른 나라의 공연 문화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래서 여행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방문하는 나라들의 유명한 공연 보기' 다.

방콕에서도 역시나 공연을 보고 싶어서 알아보니 기네스북에도 오른 엄청난 규모의 유명한 공연이 있었다. 공연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나오는데 공연장에 일찍 도착하면 코끼리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도 있다고 했다. 평소에 동물을 무서워하던 나이지만 이것은 공연의 일부이기에 배우이자 제작자인 나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서둘러서 공연장을 찾았다.

코끼리 보호소에서 하루 종일 함께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나 혼자 한국인이었다. 괜찮다. 이 사진을 본 누군가는 이제 코끼리를 타지 않고. 보호소로 향할 테니 말이다.
코끼리 보호소에서 하루 종일 함께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나 혼자 한국인이었다. 괜찮다. 이 사진을 본 누군가는 이제 코끼리를 타지 않고. 보호소로 향할 테니 말이다.
코끼리를 위해 중국 어린이 친구와 함께 영양밥을 만들었다.
코끼리를 위해 중국 어린이 친구와 함께 영양밥을 만들었다.
코끼리와의 산책. 굉장히 덥고, 습하고, 모기도 많고, 험하다. 하지만 코끼리의 눈물을 본다면 망설일 수가 없다.
코끼리와의 산책. 굉장히 덥고, 습하고, 모기도 많고, 험하다. 하지만 코끼리의 눈물을 본다면 망설일 수가 없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로 옆에서 보는 코끼리가 신기해서 사진을 찍은 후, 코끼리와 셀프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로 코끼리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울고 있었다. 그렇게 묘한 기분으로 공연을 보고 돌아온 이후, 계속해서 코끼리의 눈물이 생각났다.

그렇게 방콕에서 공연을 보고 얼마 후 치앙마이로 떠났고, 생각보다 훨씬 좋았던 치앙마이에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태국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마지막 날은 무언가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그 때 문득 코끼리의 눈물과 함께 현지 여행사를 지나치며 봤던 코끼리를 위한 봉사활동 체험 전단지가 생각났다. 여행사를 찾아가 코끼리 보호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코끼리 학대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코끼리는 원래 등에 누군가가 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인간의 고문과 학대를 받으며 인간을 태울 수 있게 되는 것이란다. 잔혹한 코끼리 훈련 사진을 보고 나니 코끼리를 만나러 가는 걸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자원봉사지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내가 지불하는 비용은 전부 코끼리의 구조와 먹이, 그리고 보호를 위해서 사용된다고 한다.

아침 일찍 투어 차량을 타고 약 한 시간을 달려 코끼리들이 살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구조된 코끼리들이 치료와 보호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귀가 잘린 코끼리를 비롯하여 아기 코끼리. 엄마 코끼리가 우리와 함께 했다. 먼저 코끼리가 가장 좋아한다는 바나나를 먹여주고, 코끼리의 건강을 위해 직접 좋은 재료들로 먹이를 만들어서 준다. 그리고 숲에서 함께 산책을 하고, 진흙 마사지를 해 준 후에 호수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 사실 조금 힘들었다. 굉장히 덥고, 물은 더럽고, 모기도 많고, 숲길은 험하다. 내 돈을 지불하고 내가 왜 그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면 절대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이건 우리 생태계의 일부를 위한 일이다.

동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코끼리가 되었다.
동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코끼리가 되었다.

봉사 참여자 중에 한국인이 나밖에 없었다. 사실 나의 과거를 고백을 하자면 8년 전 호주에서 낙타를 탔던 적이 있다. 무지했다. 유명한 관광 프로그램 중 하나였고, 동물을 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모르는 거다.

내가 이러한 문제를 알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알리기 위해서 여행을 하게 된 건 아닐까? 거창한 이유도 목적도 없이 떠난 나의 여행은 여행 속에서 하나 둘 이유가 생기고 있다. 동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동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동물들을 위한 일들이 하고 싶어지다니.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나의 변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여행으로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학대를 당하는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게 되면 내 주변의 누군가가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그 누군가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도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코끼리를 타지 않겠지. 그거면 충분하다.

여행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변하고 있다. 그러면 내 주변의 누군가도 변하겠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 김준아

- 연극배우

- 이연컴퍼니 제작PD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저작권자 © 소셜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