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은의 러시아 그림이야기 앙코르] 알렉산드르 이바노프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
[김희은의 러시아 그림이야기 앙코르] 알렉산드르 이바노프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
  • 김희은
  • 승인 2019.12.20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 1837-1857년, 알렉산드르 이바노프(1806-1858), 캔버스에 유채, 540х750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 1837-1857년, 알렉산드르 이바노프(1806-1858), 캔버스에 유채, 540х750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민중에게 해방과 구원을 약속하는 절대자

세상이 억압, 부패, 가난, 굶주림으로 황폐화되고,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해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척박한 현실 앞에 이바노프는 고뇌한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의 러시아를 구원해줄 밝은 빛을 찾는다. 그리고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통해서 표현한다.

그림 중앙에서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세례 요한이 저 멀리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외친다.

"보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 29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요르단 강변에 모여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바리새인들, 로마 병사, 죄인들, 젊은이, 늙은이 등등.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믿는 자는 왼쪽에, 믿지 않는 자는 오른쪽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다. 현세는 구세주의 등장이 필연적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계층별로 다르다.

당연히 기득권을 쥐고 있는 자들은 현실의 달콤한 안락이 즐거울 것이니 구원이니 해방이니 따위는 필요 없다. 세례 요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그들의 안락을 뒤집어놓는 해방꾼이 있으니 적의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마치 예수가 서있는 저곳이 세상 부조리와 거짓의 표상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하는 그런 기득권들의 분위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수를, 구원자를 받아 들일 수 없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세례 요한 뒤로 성자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성서의 저자 붉은 머리 젊은 요한이 있다. 그들은 예수의 출현에 기뻐한다. 그들의 웅성임에 생동감마저 느껴진다. 현실을 구원받을 기대에 모두가 부풀어 있는 듯하다.

그들 뒤로 눈을 감고 마치 현실을 외면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은 누구일까? 그림 속 어떤 다른 사람으로도 추측이 불가능한 러시아의 작가 고골이다. 그렇다. 바로 <죽은혼> <검찰관>등을 쓴 그 고골이다. 이바노프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그리스도보다 거의 1900년이나 후에 태어난 고골을 그곳에 그려 넣었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바노프는 왜 고골을 그려 넣었을까?

고골은 이바노프와 동시대를 살면서 현실 구원이란 주제로 고민하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변혁시키고자 한 작가다. 하지만 참혹한 러시아 현실에 좌절하여 모든 희망을 접어버린다. 그런 참혹한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골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바노프는 그런 그를 묘사하였다. 러시아의 참담한 현실을 걱정하는 고골이지만 외면한 채 좌절하며 그렇게 눈을 감아 버렸듯 그림 속 고골은 눈을 감고 외면하고 있다. 이바노프 동시대의 사람들은 참혹한 현실 앞에서 맞서 싸우기 보다는 외면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대표로 이바노프는 고골을 선택했다.

1825년 12월 러시아에는 최초의 근대적 혁명 운동인 데카브리스트 난이 일어난다. 그 일로 주동자 다섯 명이 처형당하고 1000여 명이 넘는 젊은 지식인들이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러시아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혁명과 개혁의 불씨를 심는 계기가 된다. 푸쉬킨 또한 데카브리스트 난에 대한 황제의 처사에 분노를 느끼며 <시베리아에 보낸다> 라는 시를 쓴다.

이바노프는 당시에 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황실 후원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있었지만 참담한 조국의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황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 그림으로 인해 이바노프는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미술 아카데미 교수였던 아버지조차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완성한다.

러시아의 구원을 갈망하는 자신의 의지를 화폭에 당당하게 담는다. 부정과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몸소 실천한 이바노프는 살아 생전에는 매우 고달픈 삶을 산다. 하지만 그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현재 러시아 최고의 그림으로 손꼽힌다. 아마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실제로 방문한 사람이라면 이 그림의 어마어마한 위용을 보고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아카데미 화파의 수장으로서 생전의 부귀영화를 누린 <폼페이 최후의 날>을 그린 브률로프와 달리 동시대를 살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시대를 위해 붓을 들었던 이바노프는 살아서 누리지 못한 최고의 영예를 죽어서 얻게 된다. 후손들에 의해 이바노프의 업적이 재조명되고 러시아 미술계 최고의 작가로 칭송 받는다. 그렇게 시대의 개혁과 변혁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이바노프는 러시아 미술 역사상 최고의 선구자였다.

 

시베리아에 보낸다

시베리아의 광산 저 깊숙한 곳에서 의연히 견디어주게

참혹한 그대들의 노동도 드높은 사색의 노력도 헛되지 않을 것이네

불우하지만 지조 높은 애인도 어두운 지하에 숨어 있는 희망도

용기와 기쁨을 일깨우나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은 오게 될 것이네

사랑과 우정은 그대들이 있는 곳까지 암울한 철문을 넘어 다다를 것이네

그대들 고역의 동굴에 내 자유의 목소리가 다다르듯이

무거운 쇠사슬에 떨어지고 감옥은 무너질 것이네

그리고 자유가 기꺼이 그대들을 입구에서 맞이하고

동지들도 그대들에게 검을 돌려 줄 것이네                                                              -푸쉬킨

 

알렉산드르 이바노프(1806-1858); 러시아의 화가. 대표작 《민중 앞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세로 5미터, 가로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으로 20여 년에 걸쳐 그려졌으며, 이 작품을 위한 습작만도 300점 이상에 이른다. 그는 180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카데미 화가이며 교수인 아버지 안드레이 이바노프(Andrey A. Ivanov)에게 그림을 배웠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1830년 정부의 후원으로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으며, 정치적인 문제로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야 했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