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결혼’, 1862년,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캔버스에 유채, 173 х 136.5см,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불평등한 결혼’, 1862년,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캔버스에 유채, 173 х 136.5см,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결혼식을 한다

칠십 살은 넘어 보이는 노인과 손녀뻘 되어 보이는 여린 소녀가 백 년을 함께 살자고 가약을 맺는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 남자가 금방 핀 한 떨기 꽃 같은 예쁜 여자 옆에 서서 결혼의 촛불을 밝힌다.

쭈글쭈글 한 남자는 제일 좋은 양복을 입고 반짝반짝 광을 낸 블라우스 리본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가슴에는 황제에게 하사 받은 황실 훈장을 다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알코올에 찌든 것일까, 너무 어여쁜 신부 모습에 수줍은 것일까,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늙은 남자는 곁눈질로 가련한 소녀를 힐끔거린다.

백옥같이 빛나는 하얀 드레스에 우아함과 순수함까지 차려 입은 청초한 여자는 '행복, 순결, 반드시 행복해집니다'라는 꽃말을 지닌 은방울 꽃을 가슴에 달고 머리에는 아직 피지도 않은 은방울 꽃 화환을 예쁘게 쓰고 축 늘어진 힘없는 손을 어렵게 내밀어 결혼반지를 끼려 한다.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두 눈은 초점을 잃고 바닥을 헤맨다. 이미 포기한 맘이야 붙들어 맬 수 있지만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애써 참으려는 그녀의 울음이 눈 주위로 붉게 일어나고 앙다문 양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금실 은실로 겹겹이 수놓은 사제복을 휘황찬란하게 차려 입은 대머리 사제는 구부정한 허리를 똑바로 펴지도 못하고 어린 신부의 미래를 옭아 매려 허겁지겁 매달리고 있다.

늙은이와 소녀를 엮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노파는 이 결혼이 허사가 되진 않을까 노심초사 노려본다. 그리고 이 둘의 인연에 더 얻어낼 것은 없는지 주름진 싸늘한 눈을 희번덕인다.

신랑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늙은 하객 4인방은 늘그막에 횡재한 친구가 심히 못마땅하다.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다. 늙은이들의 심통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들의 뒤틀린 시선이 그림 전체를 건조하게 만들고 얼굴에 진 주름만큼이나 겹겹이 한숨짓게 한다.

그런 그들을 그림 한쪽에서 팔짱 낀 채 우울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 은방울 꽃의 어린 신부와 나란히 서면 딱 어울릴 법한 턱시도의 젊은 남자는 푸키레프 자신이란다.

빚을 갚지 못하는 농노의 어린 딸을 선뜻 자신의 노리개로 취하고 말도 안 되는 불합리를 재력으로 포장하는 현실을 작가 자신은 비통한 얼굴로 바로 본다.

그림 한 켠에 야멸차게 자리 잡아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참담한 현실을 고발한다. 조용히 호통치는 것이다.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러시아 대표 풍속화가이며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사실주의 화법인 대물묘법의 대가이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저작권자 © 소셜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