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나무. 실제로 바오밥나무를 보게 될 줄이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브룸이라는 곳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예쁜 하늘을 보고 감탄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언니~ 언니~”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고, 아직 짐도 찾지 않았기에 ‘잘못 들었겠지.’ 생각하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또다시 “언니~ 여기~” 라는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에 나 말고 다른 한국인이 탔었나?’ 의아함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 동생이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그렇게 나는 동생과 함께 내 수화물 찾는 것을 기다렸다. 브룸은 그런 곳이다.

<국제공항> 이라고 적혀있지만 몇 년 전부터 더 이상 국제선을 취항 하지 않을 정도로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다. 브룸 공항에는 작은 건물이 두 개가 있는데 출발 건물, 도착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화물 찾는 곳까지 마중을 나올 수 있고, 비행기 탑승 게이트 앞까지 배웅을 할 수 있다. (국내선이기에 여권 없이 보안대만 통과하면 가능하다.)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참 정이 많은 곳이다.

수화물 찾는 곳까지 마중을 나올 수 있고, 비행기 탑승구까지 배웅을 할 수 있는 브룸 공항.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공항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아담한 공항을 나서면 차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브룸에 단 하나뿐인 쇼핑센터가 보인다. 그리고 그 쇼핑센터에서 10분을 달리면 세계 10대 바다 중 하나인 케이블 비치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의 노을이 정말 환상적인데 케이블 비치와 노을만으로도 브룸은 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엄청 작은 마을이기에 차로 15분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시즌이 딱 두 개로 나뉜다. 내가 이번에 방문한 비수기에는 버스가 9시부터 6시까지 한 시간에 한 대가 다니고, 성수기에는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30분에 한 대씩 다닌다. 심지어 비수기 일요일은 11시가 첫차이고, 크리스마스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하루에 버스를 4번 탄 적 있는데 계속 같은 기사님을 만났었다. 나중에는 먼저 알아보았다.

이렇게 작은 마을 브룸에 가기 위해서는 퍼스에서 비행기로 2시간 30분이 걸리는데 한국에서 퍼스 가는 직항도 없기에 한국에서 브룸을 가려면 최소 3대의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리고 국내선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호주가는 비행기 가격과 맞먹게 비싸다. 한 번 가려면 굉장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굉장한 곳에 내가 3번째 방문을 하게 되다니. ‘죽기 전에 다시 가 볼 수 있을까?’ 했던 곳이었던 브룸.

낭만 그 자체.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야외 영화관 <썬픽쳐>
낭만 그 자체.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야외 영화관 <썬픽쳐>

사실 2012년도에 호주 한 바퀴 여행을 했었기에 이번 세계 여행 일정에서 호주는 제외 했었다. 그런데 퍼스에 살고 있는 내 여동생이 나의 세계 여행 기간 중 브룸으로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고 나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나의 모든 여행 일정을 변경하였다. 브룸이 나를 불렀다. 브룸이 그런 곳이다.

호주 사람들조차 브룸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데 호주의 서쪽과 북쪽 사이에 위치한 브룸은 호주 시드니보다 인도네시아 발리와 더 가까운 곳에 있다.

겨울이 없고, 우기가 짧고 더운 이 지역에서는 아프리카에 산다는 바오밥 나무도 만날 수 있다. 호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휴양을 오는 이곳에는 리조트가 많은데 종종 리조트 잔디밭에서 야생 왈라비도 만날 수가 있다.

야생 왈라비가 신기해서 빤히 쳐다보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야생 왈라비.

그리고 브룸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 썬픽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영화관으로 쏟아질 것 같은 별과 함께 영화를 보다 보면 종종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모기가 있으면 모기에 물리고, 날이 더우면 더위 속에서 영화를 보는 이곳이 왜 이렇게 낭만적인지 모르겠다. 그냥 마냥 좋다.

8년 전 처음 왔던 이곳에서 김밥 집 <배고파>를 꿈꾸었고, 6년 전 <배고파>를 위해서 왔던 이곳에서 세계 여행을 꿈꾸었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 찾은 이곳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도착한 순간 나의 모든 추억을 떠오르게 해 준 브룸. 머무는 내내 내가 그곳에 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해 주었던 브룸. 브룸은 그런 곳이다.

꿈같은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꿈을 찾지 못했기에 떠나고 싶지 않다는 좋은 핑계로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다, 솔직히 떠나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헤어짐이 너무 두려웠다. 나의 오랜 친구들이 여전히 브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썬픽쳐> 스크린 위로 눈부신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졌다.
마릴린 먼로 "여긴<썬픽쳐>여성화장실이에요"

내가 살았던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도 대부분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변했다. 분명히 내가 브룸에 살 때 연인이었는데 이제는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친구, 나보다 먼저 그곳을 떠났었는데 어느새 다시 돌아와서 자리를 잡은 친구, 오랜 기간 운영하던 가게를 내놓았다는 친구... 나의 기억은 그때에 멈춰 있었지만 내 친구들에게 그곳의 시간은 진행형이었고, 그렇기에 변화는 당연한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친구들은 오히려 나를 보며 놀랐다. “연극배우가 되었다며?” 그때의 나는 연극 영화학과 휴학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미 그 직업을 갖게 된 지 오래되어서 놀라는 내 친구들이 더 놀라웠는데 내 친구들에게 나 또한 그때에 멈춰있는 것이겠지.

또다시 기약 없는 헤어짐을 해한다는 사실이 참 두려웠다. 그때 떠날 때도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올게!”라고 말을 했었고, 그 언젠가가 되어서 다시 돌아왔기에 분명 또다시 언젠가라는 때가 올 것을 알지만 헤어짐은 언제나 슬프다.

하지만 한 가지 설레는 일은 얼마나 많은 변화 뒤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물론 브룸은 항상 그 자리에 있겠지. 변하지 않는 브룸에 변함없이 살고 있는 친구들의 변화가 궁금해졌다. 브룸은 그런 곳이다.

‘죽기 전에 다시 가 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만큼 멀리 있던 브룸을 다시 찾게 해 준 나의 세계 여행.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

- 연극배우

- 이연컴퍼니 제작PD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케이블 비치. 이 사진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곳의 노을을 기다려도 “참 좋은 하루 였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저작권자 © 소셜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