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은의 러시아 그림이야기-앙코르] 니콜라이 게 '배반자 가롯 유다 (부제: 양심)'
[김희은의 러시아 그림이야기-앙코르] 니콜라이 게 '배반자 가롯 유다 (부제: 양심)'
  • 김희은
  • 승인 2020.03.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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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자 가롯 유다 (부제:양심)', 1891년, 니콜라이 게 (1831-1894), 캔버스에 유채, 149x210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배반자 가롯 유다 (부제:양심)', 1891년, 니콜라이 게 (1831-1894), 캔버스에 유채, 149x210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사람의 양심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일까?

무언가를 갈등하고 고민할 때 특히 불의와 야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양심의 빛깔은 그림처럼 어두운 흑색인가 보다. 누군가가 끌려가고 있다. 사건 열쇠를 쥐고 있는 그림 속 사람은 무리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망설임과 두려움으로 온몸을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다. 바로 예수를 은화 30냥에 팔아 넘기고 그 죄책감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롯 유다다.

사실 일상의 갈등 속에 이번만 눈감아 버리자 할 때가 있다. 애써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부정한 양심에 손을 들어 줄 때가 있단 말이다. 그때의 검게 음영진 내 모습을 떠올리며 비참하게 서 있는 구부정한 어깨의 가롯 유다를 반영하게 된다. 게의 이 그림은 참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니콜라이 게는 당시 황제의 압제와 제도적 모순 속에 수난 당하는 약자의 고충을 나 몰라라 하고 눈과 귀를 닫아버린 지식인의 몰염치를 배반자 유다를 빌어 아프게 꼬집는다. 시커멓게 그림자진 권력층의 양심을 검은 어둠 속에 묻어 비난하고 있다.

양심은 처음엔 뾰족한 끝을 갖고 있는 삼각형 모양이란다. 그러다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마음속을 이리저리 구르며 뾰족한 모서리로 쿡 쿡 찔러 아픔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삼각형의 끝이 닳고 무뎌져 양심에 반하는 행동 앞에서도 우리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무뎌지는 양심을 어떻게 단도리 할 수 있을까? 살아있는 영혼으로서 일신에 야합하지 않는 내가 되는 법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가르침은 깨어있는 영혼이 되라고 말하지만 그 방법은 참으로 모호하다.

게, 니콜라이 (1831-1894) 러시아 초상화, 역사화, 종교화의 대가이다. 1871년 이동파 첫 전시회에 <페테르고프에서 알렉세이 황태자를 심문하는 표트르 대제>를 출품한다. 톨스토이를 진정으로 존경하였으며 1884년 그린 톨스토이 초상화가 유명하다. 화가 말년에는 종교적인 주제를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고, 대표작으로<배반자 가롯 유다>(1891년), <페테르고프에서 알렉세이 황태자를 심문하는 표트르 대제>(1871), <진리란 무엇인가>(1890)가 있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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