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들어가요!!’, 1892년, 블라디미르 마코프스키(1846-1920),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못 들어가요!!’, 1892년, 블라디미르 마코프스키(1846-1920),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의 수많은 마르멜라도프에게

술을 마셔 좋은 점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술이 지나쳐 생기는 나쁜 결과가 너무 많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는 술로 인해 인생을 망친 전형적인 인물 마르멜라도프가 나온다.

라스콜리니코프와의 첫 만남에서 마르멜라도프는 술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저도 한때는 공무원이었죠. 집에는 아픈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데, 나는 아내의 양말마저 내다 팔아 술만 마시고, 이제는 부인이 무서워 집에도 못 들어가고, 이렇게 술 마시기 벌써 닷새째..

나에게 하나뿐인 딸은 황색 감찰(매춘부) 일을 하러 나가고, 그 애가 그렇게 벌어온 돈도 술값으로 다 써버렸지요. 난 돼지 같은 인간이에요"(중략) 라스콜리니코프가 몸도 가누지 못하는 그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자, 그의 부인이 울부짖는다.

"몰래 갖고 나간 11루블 다 어쨌나요? 옷마저 달라졌어! 입고 나간 옷은 도대체 어디 벗어놓고 온 거죠? 모두 굶주리고 있는데! 굶주리고 있는데! 아아, 저주받는 게 낫다! 그러고서도 부끄럽지 않나요?"

보드카는 맑고 깨끗하지만, 코를 빨갛게 만들고 평판을 검게 한다(Водка, хотя она и белая - красит нос и чернит репутацию-А. П. Чехов)고 안톤 체호프는 말했다. 러시아만큼 술이란 주제가 문학에 자주 등장하고 사회를 지배하고 역사를 뒤흔든 나라도 드물다. 심지어 대통령이 금주령을 선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실 지나친 음주는 자신만 병들게 하는 게 아니다. 함께 사는 가족과 주변 모두를 음울하게 만든다.

마코프스키의 그림에서도 알코올 중독 말기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술집을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온몸에서 알코올에 찌든 술 냄새가 막 풍기는 듯하다. 가족의 행색이 남루하다. 필사적으로 남자를 막아서는 아내의 절망적이고 힘든 몸짓. 엄마에게 딱 붙어 아빠를 바라보는 겁에 질린 딸아이. 남자의 손엔 술값으로 맡겨버릴 가족 중 누군가의 외투가 쥐어져 있다. 고골의 <외투>에서 알 수 있듯이 혹독한 날씨의 러시아에선 외투가 곧 생명이다. 러시아에서 외투 없이 겨울을 보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온몸으로 남편을 막아서는 아내의 눈빛이 슬프다 못해 공허하다. 이 가족이 엮어내는 슬픈 아우라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알코올 중독으로 주위 가족을 힘들게 하는 건 인간이 만드는 가장 슬픈 범죄 중의 하나다. <탈무드>를 보면 아담이 처음으로 술을 빚을 때 신기한 음료수에 호기심이 이끌린 악마가 다가와서 한 모금을 청한다. 술 맛에 감동한 악마는 아담에게 감사의 선물을 하겠노라며 양, 사자, 원숭이, 돼지의 4마리 짐승을 잡아 와 포도밭에 동물들의 피를 거름으로 부으니 포도는 풍성하게 자라났다고 한다. 하지만 동물의 피 탓에 부작용이 생기게 되고 그 때문에 사람이 술을 마시면 처음엔 양처럼 순하다가 점차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좀 있으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하다가 지나치면 돼지처럼 더러워지는 단계를 거친단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적당히’가 해답이겠지만 불가능한 경우가 너무 많아 안타까울 뿐이다.

마시는 당사자의 몸 또한 병들지만 그런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의 가슴엔 피멍이 든다.

이게 1800년대 러시아에서만의 현실일까?

마코프스키, 블라디미르 (1846-1920) 1872년부터 러시아 이동파 화가로 활동한 19세기 대표 풍속화가다. 콘스탄틴 마코프스키의 동생이다. 일반 민중의 삶을 따뜻한 눈길로 그린 <가로수 길에서> (1886-1887) 외에 『혁명가의 신문』 (1904), 『밤의 집회』 (1875~1897)등 사회 정치적인 테마를 주제로 그린 작품도 많이 남겼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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