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유년기 경험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까. 엄마가 선생님이었던 나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동시에 멀쩡한 직장부터 때려치웠다. 내가 소망했던 가정은 항상 엄마가 집에 있는 훈기 넘치는 집안이었기에.

지금도 가끔 엄마의 옛 시간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밤늦도록 전구 알을 양말 안에 끼우고 발뒤꿈치에 난 구멍을 깁던, 추운 겨울 아침밥을 국에 말아 훌훌 떠먹으면서 허겁지겁 스타킹을 신던, 제사 준비를 위해 퇴근하자마자 외출복 채 부엌으로 뛰어 들던 엄마의 숨 가빴던 젊은 날 풍경. 종갓집 며느리 노릇을 하며 직장을 다니던 엄마의 네 번째 딸이었던 나는 늘 엄마와의 시간이 고팠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집에만 있는 엄마로 살고 싶었다. 특별히 상처로 남아있지 않은 유년의 기억들이었건만 왜 그런지 결정적인 순간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나는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자본주의의 위세가 시시각각 안방으로까지 쳐들어오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 길이 결코 쉽질 않았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가 힘든 것은 바쁜 탓이라 여겼기에 한 가지 일을 포기하면 조금쯤 쉬워질 줄 알았던 건데 착각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접은 나에게 모든 집안일이 달려들었다. 모두들 내 앞으로 와서 죽겠다고 난리였다. 화분도 시들고, 음식도 상하고, 먼지도 쌓이고, 아이도 징징대고, 이런저런 사람 관계마저 그랬다. 애써서 돌보지 않으면 쉽사리 허물어졌다. 꼭 사기를 당한 것만 같았다. 어떻게 결혼 이전에는 한 번도 가족끼리 어울려 살기 위해 누군가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자신의 아둔함을 탓하고, 결혼을 후회해보고, 돌아가도 받아줄 리 없는 친정부모를 원망해보았지만 딱히 해결책이 있을 리 없었다. 이 모든 것은 ‘헛똑똑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 스스로 자초했던 일 아니던가. 정답 없는 삶의 바다에서 지도 한 장 없이 헤매고 또 헤맸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다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있었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더니 여성가족부 시계도 그렇다. 이젠 굳이 전업주부라고 주장할 수도 없을 만큼 시나브로 해내야 할 일이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일이 대부분 자리를 지키면서 남을 기다리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의 시간은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스스로 떠나야만 하는 시간이리라. 오지 않을 사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만큼 서로에게 못할 짓이 또 어디 있으랴. 새로운 삶의 전환이 필요했다. 고심 끝에 이십여 년 간 써놓았던 글을 모아 <엄마 난중일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다. 그간 놓지 못했던 전업주부로서의 은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기 위해서였다.

자본주의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자존감이 바닥날 만큼 스스로를 견뎌야 했던 엄마로서의 삶. 그 엄마들도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재충전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몸짓이었다. 가족 울타리에 안주하려 하지 말고 엄마 너머의 삶을 가꾸며 나 자신과 오롯이 만날 수 있어야 내 삶이 드디어 완성되는 것 아닐까싶다.

다행스럽게도 그럴만한 시간이 찾아와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제부터는 나를 향해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설 작정이다. 가면서 꾸준하게 기록으로도 남길 참이다. 함께 걷는 동료들의 자기를 향한 도전 또한 열렬히 응원한다. 홀로 지낼 수 있는 사람과는 함께 가는 길도 가볍고 아름답기에.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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