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지 않았다면 절대로 3200M까지 오르지 못 했을 것이다
함께 걷지 않았다면 절대로 3200M까지 오르지 못 했을 것이다

ㆍ2018년 12월 5월–함께하기

오늘은 다 같이 걸었다. 미희언니, 태영오빠, 수빈이, 창훈이, 그리고 나.

나이도, 성별도, 고향도, 직업도 다른 서로 잘 모르는 다섯 남녀. 하지만 우리에게는 엄청난 공통점이 생겼다. 2018년 12월 1일부로 산에 오른 자가 되었다는 것.

다 같이 시작하기는 했지만 체력도, 체구도, 경험도 모두 달랐기에 산에서는 자기 페이스대로 때로는 함께 걷기도, 따로 걷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미희언니와 대화도 나누지 않고 열심히 걷고 있는데 앞에서 기다리던 태영 오빠가 말했다.

“오늘 고도도 높아지고, 거리도 멀어서 시간 안에 도착하기 위해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면서 함께 걸어야 할 거 같아요.”

“네, 좋아요.”

좋다고는 말 했지만 사실 겁이 났다. 4일 동안 가장 뒤쳐져서 걸었던 나는 앞사람을 따라가고 뒷사람을 앞서야 했기에 혹시라도 피해를 주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정말 아무 생각도 안하고 근육통도 못 느낄 정도로 미친듯이 걸었다. 심지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에너지 음료도 사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금 늦어지면 앞에서 기다려 주고, 뒤에서 밀어 주었다. 그렇게 꼬박 8시간을 걸어서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3200M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다같이 걷기로 한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돈으로 에너지 음료를 사 마셨다.
다같이 걷기로 한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돈으로 에너지 음료를 사 마셨다.

이들이 없었다면 난 아마 오늘 안에 절대 오르지 못했을 거다. 부족한 나와 함께 해주는 모두가 너무 고마워서 오늘 숙소비를 내고 싶다고 말했더니 모두 진심으로 사양했다. 부족하지만 그렇게 라도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수빈이가 말했다.

"누나 우리 팀 이잖아요."

밥을 먹고 있었는데 결국 눈물이 났다. (태영 오빠도 운 건 비밀이다.)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과 내일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가장 큰마음은 고마움.

항상 여행은 혼자 다니는 것이 편했던 나인데 점점 함께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팀이라니… 너무 든든했다. 이렇게 산에서 함께 하기를 배웠다.

어제 엄마에게 짜 증내서 미안하다고 연락했는데도 계속 신경 쓰여서 오늘 걸으면서도 몇 번을 울컥했다. 힘드니까 자꾸 마음이 약해졌고, 약해지는 나 자신이 싫은데 그만큼 또 약해졌다. 혼자였으면 정말 울면서 포기하고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ㆍ2018년 12월 6일–도착

아침에 코피가 났다. 너무 무서웠다. 오늘 고도가 엄청 높아질 텐데 고산병일까?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그냥 평소처럼 걸어야만 했다.

날씨도 안 좋고 멀리 보이던 도착지점은 다가가면 안개로 가려지고, 다가가면 안개로 가려졌다. 한걸음 한걸음이 힘겨웠다. 너무 춥고 힘들고 무엇보다 심장이 너무 아팠다. 멈춰서 고산병 약도 한 알 먹었다. 두려웠다. 계속 가족들을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다치거나 일이 생기면 가족들이 슬퍼할 걸 알기에 너무 슬펐다. 힘을 내야 한다. 참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걷기. 앞으로 가기. 나아가기.

바로 앞에 "Congratulations!" 라고 써 있는 표지판을 보고 차마 쉽게 발을 내 딛을 수 없었다. 너무 소중해서 그 곳까지 가기 힘들었고, 결국 도착해서 펑펑 울었다. 못 올 줄 알았다고. 근데 나 왔다고. 혼자 4130M ABC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서서 펑펑 울었다.
바로 앞에 "Congratulations!" 라고 써 있는 표지판을 보고 차마 쉽게 발을 내 딛을 수 없었다. 너무 소중해서 그 곳까지 가기 힘들었고, 결국 도착해서 펑펑 울었다. 못 올 줄 알았다고. 근데 나 왔다고. 혼자 4130M ABC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서서 펑펑 울었다.

혼자 걸으며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기도 아무 생각을 안 하기도 했다. 누가 보면 에베레스트라도 오른 줄 알겠지만 산에 오른 경험이 거의 없는 나에게는 그보다 더 한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걷고 있는데 머리 위에 뜨는 구조 헬기를 볼 때마다 계속 겁이 나서 멈추었다. 한없이 겁쟁이인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 히말라야에 오른 사람들의 사진 속 표정. 어떤 곳이기에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오늘 드디어 그 궁금증이 풀렸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바로 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 "Congratulations!" 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을 보고 차마 쉽게 발을 내디딜 수 없었다. 너무 소중해서 그곳까지 가기 힘들었고, 결국 도착해서 펑펑 울었다. 못 올 줄 알았다고. 근데 나 왔다고. 혼자 4130M ABC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서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 동생에게 전화해서 또 펑펑 울었다. 못 올 줄 알았다고, 근데 나 왔다고.

그리고 선물을 받았다. 눈이 내렸다. ABC에 여러 번 왔던 사람도 쌓여 있는 눈은 봐도 내리는 눈은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하던데 눈이 내렸다. 걸으면서는 힘들지 말라고 하늘에서 도와준 것인지 도착한 직후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산에서 진짜 많은 걸 받았다. 감히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것들을.

ㆍ2018년 12월 7일–산에 오른 이유

“일단 걸어라. 일단 도전해 봐라. 지금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말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그건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고 박영석 대장님 메모리얼. 단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고 박영석 대장님 메모리얼. 단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고 박영석 대장님-

새벽에 일어나 쏟아질 것 같은 별과 별똥별을 보았다. 소원은 빌지 않았다. 이미 산에 오른 것만으로 큰 소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ABC에 마련되어 있는 고 박영석 대장님의 메모리얼을 방문하고, 일출을 봤다. 정말 완벽했다. 밤새 눈이 내렸는데 아침이 되니 거짓말처럼 맑아져서 모든 봉우리가 보였고, 어제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이래서 산에 오르나 보다. 매일매일이 다르고 알 수가 없다. 산에 오르는 것이 인생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예전에는 그 말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산에 오르고 나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알 거 같다. 우리의 인생은 매일매일 알 수가 없으며 절대 자만해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같은 하루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 동안 어떠한 일들이 나타나 날 지 누구도 알 수 없기에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중간에 쉬어야 할 수도 있고, 잠시 내려갔다 와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만 있다면 언젠가는 나처럼 나약한 사람도 목표에 도착해 있을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과정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다.

오늘은 2일 동안 올라온 길을 1일 만에 내려가야 했기에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또 다시 아무 생각 없이 미친 듯이 걸었다. 해가 진 뒤에는 어둠은 물론이고 체온 유지 때문에도 산행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오늘은 심지어 해가 진 오후 6시까지 걸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왜 굳이 하루 만에 내려오려고 했지? 이게 보통 한국 사람들의 코스였고, 그냥 그래야 하는줄만 알고 그랬다. 조금 더 즐기고 천천히 내려올 걸. 후회해도 늦었기에 다시 갈 이유로 만들기로 했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더 느끼고 더 즐기면서 천천히 내려오고 싶다. 오늘은 산에서 느린 게 더 많이 얻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왼쪽부터 미희, 준아, 창훈, 수빈, 태영, 우리의 네팔친구 스바쓰.
왼쪽부터 미희, 준아, 창훈, 수빈, 태영, 우리의 네팔친구 스바쓰.

ㆍ2018년 12월 8일–꿈을 꾸다

현실이다. 돌아왔다. 끝이 났다. 꿈을 꿨다. 믿기지가 않는다.

산에서 무얼 보았냐고 묻는다면 ‘같은 길을 걷는 많은 이들을 보았습니다.’

산에서 무얼 했느냐고 묻는다면 ‘먹고 자고 걸었습니다.’

산에서 무얼 느꼈냐고 묻는다면 ‘가족들을 향한 제 마음을 느꼈습니다.’

산에서 무얼 배웠냐고 묻는다면 ‘여행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엄청난 걸 깨닫고, 엄청난 걸 얻지는 않았다. 하지만 꼭 필요한 걸 얻었다. 원래도 알고 있었고, 원래도 느꼈던 것들이지만 자주 잊었던 것들. 다시 느끼고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다.

꿈을 꾼 것만 같은 히말라야에서의 7박 8일. 걸으면서 가졌던 유일한 꿈은 “무사히 내려가게 해 주세요.” 꿈이 이루어졌으니 정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겠다.

ㆍ2019년 5월–히말라야 일기를 다시 읽으며

나의 글을 본 미희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정말 사람의 기억은 미화되나 봐. 너의 글을 읽으니 그때가 생각나고, 그 보다 더 힘들었던 일들도 많았던 거 같은데 다 잊고 좋은 기억들만 남아 있거든.”

“맞아요, 언니. 저도 그래서 그 당시에 썼던 일기 가져온 거예요. 계속해서 여행을 하며 하루에도 너무 많은 감정들을 느끼기에 당시의 감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건 그때의 저 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아마도 우리의 기억이 미화된 이유는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닐까?

▲김준아

-연극배우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instagram.com/junatour

▲히말라야 사진첩

산에서 무얼 배웠냐고 묻는다면 ‘여행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산에서 무얼 배웠냐고 묻는다면 ‘여행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정상에서의 만찬. 흰쌀밥과 계란 후라이를 시키고 각자 챙겨 온 고추장과 참치를 넣은 비빔밥. 힘들 때 마다 다 같이 정상에서 비빔밥을 먹자며 힘을 내서 올랐다.
정상에서의 만찬. 흰쌀밥과 계란 후라이를 시키고 각자 챙겨 온 고추장과 참치를 넣은 비빔밥. 힘들 때 마다 다 같이 정상에서 비빔밥을 먹자며 힘을 내서 올랐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의 기억이 미화된 이유는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아마도 우리의 기억이 미화된 이유는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무서웠던 다리. 하지만 저 다리가 없었다면? 끔찍하다. 저만큼 내려갔다가 올라야 하기 때문에
정말 무서웠던 다리. 하지만 저 다리가 없었다면? 끔찍하다. 저만큼 내려갔다가 올라야 하기 때문에
밤새 눈이 내렸는데 아침이 되니 거짓말처럼 맑아져서 모든 봉우리가 보였고, 어제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밤새 눈이 내렸는데 아침이 되니 거짓말처럼 맑아져서 모든 봉우리가 보였고, 어제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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