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은의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이야기]⑯바실리 수리코프 ‘총병의 아침’
[김희은의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이야기]⑯바실리 수리코프 ‘총병의 아침’
  • 김희은
  • 승인 2019.05.16 2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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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병의 아침 (1881년), 바실리 수리코프(1848-1916), 캔버스에 유채, 223 x 383,5 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불통의 정치, 피터 대제!

그림의 배경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심장 '붉은 광장'2이다. 뒤쪽으로 아름다운 성바실리 성당3이 보이고 오른쪽엔 크레믈 궁4의 하얀석조 벽이 보인다 (피터대제 시기에 모스크바 크레믈은 현재의 붉은 벽돌이 아닌 흰색 석조 건물이었다).

피터 대제가 강력한 개혁 정책을 펼치던 당시 황제의 총병(스트렐치;이반 뇌제 시절 창설된 사격부대)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대제는 특별군제를 폐지하고 상비군제를 운영하면서 황실의 군대 총병 또한 여기에 편입시킨다. 한마디로 구조조정을 통해 총병의 수를 대폭 줄인 것이다. 그렇게 쫓겨난 총병들이 대제의 비합리적인 개혁 정책에 반기를 든다. 하지만 이 반란은 순식간에 제압되고 총병들은 붉은 광장에 마련된 처형장에서 형장의 이슬로 모두 사라진다. 이 일로 사형당한 총병의 수만도 2000명이 넘는다 한다.

바로 그 처형 장면이다. 한 무리의 사형수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욱한 안개 속에 을씨년스러운 싸늘함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늦가을 이거나 초겨울 일 것이다 .계절의 느낌이 이들의 비극을 한층 더 슬프게 한다. 세상과 작별해야 하는 반란군들은 제 각각의 모습으로 현재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시작되었다! 군복이 벗겨진 블라우스 차림의 남자를 시작으로 모두 단칼에 베어 질 것이다.

사내를 끌고 가는 사형 집행자의 번뜩이는 칼이 섬찟하다. 총병의 가족들은 탄식한다. 아내는 절규하고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공포에 떨고 있다. 자식을 보내야 하는 어머니는 땅바닥에 주저 앉아 통곡한다.

피터 대제가 말을 타고 위풍당당하게 그림 오른편에 나타났다. 완고한 모습의 황제는 두 눈을 부라리며 서있다. 나를 따르지 않는 자 곧 죽음이다 라고 외치는 듯 보인다. 대제의 시선이 빨간 두건을 쓰고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남자와 대각선으로 마주보며 견제하고 선다. 급진 개혁을 추구하는 대제와 러시아 전통을 고수하려는 보수파와의 대립이다. 그림에서 구습을 상징하는 사람들은 모두 러시아 전통 복장을 입고 있다. 팽팽하게 맞서며 신경전을 벌이는 듯 보인다.

하지만 총병을 대표하는 남자의 손에 들려진 촛불이 꺾인 것을 보니 대제의 한판 승이다. 총병 들의 분노를 맞받아 치며 개혁의 고삐를 절대 늦추지 않겠다 눈빛을 보낸다. 결국 대제는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대제 옆에 서있는 외국 사신은 개혁을 반대하는 러시아인 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역사라는 시간의 강 속에 수많은 민중들은 물살을 탄다.

급류에 휩쓸리기도 하고 또는 물길을 만들어 새로운 흐름을 열기도 한다.

수리코프의 그림 속 민중들은 지금 급류에 휩쓸려 허우적대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정확히 짚어낸다. 대제를 비롯한 소수의 개혁자들이 시대를 이끌어 앞서 가더라도 역사의 주인공은 지금 쓰러져 통곡하는 저 수많은 민중들임을, 그리고 그들의 삶이 모여 러시아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도자가 민중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발을 내딛는 건 민중이다. 그래야 역사가 시작된다. 지도자는 민중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선택권은 오로지 민중에게만 있다. 그러므로 위정자들은 힘껏 백성을 살피고 그들과 소통해야 함을 수리코프는 말하고 싶어한다. 현재 피터 대제의 급진적 개혁 앞에 그의 백성이 아파한다.

수리코프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민중과의 소통은 안중에도 없이 독선적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밀고 나가는 위정자를 조용히 꾸짖는 거다.

1881년 3월 1일 바실리 수리코프의 첫 작품 <총병의 아침>이 이동파5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이날은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된 날로 러시아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맞게 되는 날이었다. 당시는 허울뿐인 농노해방을 실시한 후 계속되는 기만 통치로 민심이 들끓던 시기였다.

황제는 황관이 주는 달콤한 유혹을 내려 놓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다가 결국은 나로드스키 혁명파6가 던진 폭탄에 목숨을 잃는다. 참으로 허무한 권력자의 말로다.

민중이 역사의 주인공임을 외면하는 위정자

결국 소통이 최고의 덕목임을 암시하며 이 그림을 그린 수리코프의 염원과는 달리 알렉산드르 2세 이후 왕권에 오른 3세는 더욱더 불통정치를 강화하고 니콜라이 2세에 이르러 결국 로마노프 왕조는 멸망하게 된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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