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News1 박세연 기자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News1 박세연 기자

[소셜타임스=김승희 기자]

재계 40위의 태광 그룹이 총수 일가 소유의 골프장에서 담근 김치와 수입 와인을 계열사에 강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태광그룹 임직원이 받은 김치와 와인은 선물이 아니라 총수 일가의 돈벌이 수단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태광그룹 소속 19개 계열사가 총수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의 김치와 와인을 고가에 사들인 사실을 적발하고, 이호진 전 회장과 김기유 그룹 경영기획실장, 흥국생명 등 19개 계열사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17일 밝혔다. 총 21억8000만원의 과징금도 부과했다.

다른 제품과 합리적으로 비교해보지도 않고 총수 일가가 만든 상품을 대량 구매해 부당이익을 제공한 계열사들을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공정위는 밝혔다.

공정위는 이 전 회장이 김치와 와인 판매를 통해 사익을 편취했다고 설명했다. 회원제 골프장인 휘슬링락CC를 김치 판매 통로로 활용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태광그룹 계열사들은 2014년~2016년 그룹 내 골프장인 휘슬링락CC가 공급하는 김치를 시중 제품보다 2.5~3배 비싸게 떠넘겼다. 512톤 95억5,000만원에 달했다. 김치 판매 영업이익률만 43.4%~56.2% 수준이었다. 더구나 이 김치는 식품위생법 기준에도 맞지 않는 불량김치인 것으로 드러났다. 휘슬링락CC는 김치제조·판매와 관련한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재판 진행 중이다.

구매량을 할당받은 계열사들은 직원 복리후생비, 판촉비 등 회사 비용으로 김치를 구매했다. 이 김치는 직원들에게 ‘급여’명목으로 지급했다. 휘슬링락CC가 이를 통해 거둬들인 최소 25억5000만원의 이익은 이 전 회장 등 총수 일가에 배당 형태로 지급됐다.

직원 전용 온라인 쇼핑몰도 이용했다. 임직원에게 김치를 살 때만 쓸 수 있는 김치 구매 포인트 19만점을 제공한 뒤 임직원 의사와 관계없이 취주소를 취합해 김치를 배송했다. 배송이 끝나면 김치 포인트 19만점을 일괄 차감하는 방법을 썼다. 김치 구매 포인트의 금액은 각 계열사가 복리후생비 또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이용해 휘슬링락CC에 일괄 지급했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자료=공정거래위원회

휘슬링락CC는 총수 일가가 지분 100%를 가진 회사로 2011년 개장 이후 영업 부진에 따라 줄곧 적자에 허덕였다. ‘김치 프로젝트’는 김기유 실장이 이 전 회장의 지시로 휘슬링락CC의 실적 개선을 위해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휘슬링락CC는 티시스에 합병됐다. 티시스는 총수 일가가 지분 전부를 소유한 회사다. 공정위는 이 전 회장이 휘슬링락CC를 전혀 다른 업종인 김치 생산에 뛰어들게 한 뒤 여기서 만든 김치를 그룹 계열사들에 고가에 판매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총수 일가가 소유한 와인회사 메르뱅을 통해서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메르뱅은 2018년 총수 일가가 100%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와인은 김치와 달리 임직원 ‘명절 선물’로 구매할 것을 지시했다. 계열사들은 그룹의 지시에 따라 메르뱅 와인을 선물용으로 46억원 어치 사들였다. 계열사는 임직원 선물 지급기준을 개정해 복리후생비 등 회삿돈으로 와인을 구매해 설이나 추석 때 임직원에게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도 태광 계열사들은 와인 가격 등 거래 조건에 대한 합리적 고려나 다른 제품과 비교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이 전 회장의 부인 등은 이를 통해 7억5000만원의 이익을 얻었다.

김치와 와인으로 재미를 본 태광이 구매 물량을 늘려가던 중 공정위가 2016년 9월 현장 조사가 시작되자 이런 행위를 중단했다. 공정위는 김치와 와인 구매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모는 최소 33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계열사들이 총수를 정점으로 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아래서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데 동원됐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회삿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2011년 구속 기소된 후 건강상 이유로 풀려난 뒤 술ㆍ담배를 즐기는 모습이 보도돼 ‘황제 보석’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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