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블로그 원년 멤버로 시작하여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에 글을 써온 지 20년입니다. 처음에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소통이 마냥 신기해서 재미가 더 났었던 것 같아요. 나의 생각을 오롯하게 끝까지 써놓을 수 있는 공간, 그렇게 올린 글을 누군가가 읽고 공감이나 댓글로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사이버 상의 대화야말로 현실 세계에서는 도저히 이룰 가망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의 진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말문이 열리자마자 남들의 뜬금없는 참견에 막히고, 맥락 없는 옆 친구의 지방방송에 휩쓸려 용두사미로 끝나버리게 되는 나의 문장들이 스스로 온전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누구 하나 방해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몇 번을 되읽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해 업로드를 해놓고 나면 누군가 다가와 차분히 그 글을 읽고 댓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블로그 소통 방식은 과도하게 즉각적이지 않으면서도 쌍방 소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었어요. 굳이 특정한 상대방에게 편지처럼 띄울 필요도 없고, 혼자 하는 독백이면서도 은연중에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다는 점에서 고독한 사피엔스에게 특별히 어울리는 공간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게 좋아 하루에 두어 시간씩 나를 향한 블로그 글쓰기에 몰입해왔는데 어느 날 문득 위기감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한 글들이 하루아침에 계정 해킹으로 몽땅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 때문에요. 그 즈음 파워블로거라는 제도가 생겨 너도나도 노출 순위를 신경 쓰는 풍조가 생겨났고 몇몇은 진짜로 계정이 털리기도 했어요. 저 역시 이웃 맺기로 영향력을 확장해보려는 낯모르는 홍보마케터들에게 수시로 시달렸고요. 오롯한 대화의 도구로 즐기던 블로그가 언젠가부터 광고 시장으로 탈바꿈되면서 저 역시 피난살이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그간 써놓았던 블로그의 일상 기록을 책으로 만들어두고 싶어서 출판 욕심도 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책이 『엄마 난중일기』였지요. 더불어 오지랖통신이라는 개인 계정을 따로 만들어 메일 서비스를 시작했고요. 하나둘 사라진 블로그 글 친구들을 찾아 다른 SNS를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미투데이에 빠져있었는데 갑자기 서비스를 중지하더군요. 도무지 경제성이 보이지 않았던가 봐요. 그 이후로는 트위터로, 카페로, 밴드로, 카카오스토리로, 페이스북으로, 인스타그램으로 마케터들을 피해 돌아다녔지요. 그러다 보니 이것도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이버 젠트리피케이션 말이죠.

출판 과정을 겪어보니 거기마저 저자의 생각대로 책이 나오는 게 아닙디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커뮤니케이션의 진수’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마치 선악과를 먹은 이브처럼 어느 시점에선가 불현듯 그런 현실을 자각하는 눈이 저에게 생긴 거겠지요. 그래서 독립 작가 과정을 만들었던 겁니다.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먼저 완성해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 세상의 그 어떤 곳도 결국 마케팅과 시장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요. 차라리 두 개를 분리해 병행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싶어요. 그렇게 수년 동안의 젠트리피케이션의 시대를 거쳐 저도 조금씩 되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이젠 도망가지 않으려고요. 어떻게든 제 방법대로 버텨보려고 합니다. 누군가 흔들어서 흔들리는 게 아니라, 제가 흔들리니 남이 흔드는 것으로 핑계 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서요.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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