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식사', 1865-1876년, 바실리 페로프(1833-1882), 캔버스에 유채, 84x126см,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수도원의 식사', 1865-1876년, 바실리 페로프(1833-1882), 캔버스에 유채, 84x126см,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명의식을 잃어버린 19세기 러시아 종교, 보드카를 섬기다.

 

검은 옷의 사제들이 흥청망청 마시며 질펀하게 즐기고 있다. 사제들의 피둥피둥 살찐 기름기가 화폭 전체를 가득 메운다. 진정 섬겨야 할 하늘의 신은 뒷전에 두고 챙기지 않아도 되는 주(酒)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사원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주注신 사랑이 열렬하다.

그림 왼쪽에 앉아있는 사제는 채워지지 않는 술잔을 안타까워하며 술병을 열지 못하는 하인을 질책하며 재촉한다. 술병을 열지 못해 안간힘을 쓰는 하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이 만찬에 빠져서는 안 될 보랏빛 드레스의 귀족 부인은 사원의 돈줄일 것이다. 주(酒)신 만큼이나 사제에겐 소중한 돈의 신이다. 집사 사제의 안내를 받으며 사원 성찬에 초대받은 그녀지만 무엇이 못마땅한지 남편의 팔짱을 끼고 시큰둥하게 돌아선다.

그런 그녀를 향해 가난하고 병든 노파가 동냥의 손길을 내민다. 잔치에 초대받으면 안 되는 거지로 인해 맘이 상한 것일까? 아님 사제들의 흥청망청에 자신을 초대한 것이 못마땅한 것일까? 뾰로통하게 돌아서는 그녀를 향해 내민 노파의 하얀 손만이 처량할 뿐이다.

쓰러져 동냥하는 거지들 맞은편에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상황을 내려 보고 있다. 벽에 걸린 예수는 쓰러진 병든 자와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겠지만, 이 질펀한 기름기가 세상의 구원을 방해하는 듯하다. 아니면 곧 있을 사제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응징을 기다리며 그들을 내려다 보고 계신지도 모른다.

19세기 러시아는 찌들 대로 찌들고 썩을 대로 썩어 민중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현실을 괴로워하는 일반 백성들의 통곡 소리가 천지를 울릴 때였다.

민중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고충을 헤아려줘야 할 신의 심부름꾼 사제들이 사리사욕에만 급급하다. 먹고 마시고 세상 시름은 뒷전이고, 신의 그늘에 숨어 자신의 탐욕만을 채운다.

사제라는 허울 좋은 옷을 걸치고 세상의 탐욕과 교만에 자신을 피둥피둥 살찌우는 악의 상징이다. 말도 안 되는 이 현실을 페로프는 돌려 비판하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날카롭게 잘못된 현실을 지적한다. 고통받는 민중의 눈과 귀가 되어 현실을 고발하는 페로프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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