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아이들이 크는 속도를 갑자기 위협적으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아이에 비해 저는 늘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으니까요. 하긴 그 정도로 급속하게 늙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거나 입에 갖다 대고 쭉쭉 빨고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자라나는 아기를 보면 어영부영 살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하기도 해요.

이젠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을 거쳐 이순(耳順)의 나이까지 코앞에 와 있는 데 아직까지 날마다 갈팡질팡 울화가 치미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닌가 봅니다. 요즘은 젊은이들의 자기혐오 또한 만만치 않습디다. 배울만한 좋은 것들이 초속으로 온라인 세상을 날아다니며 눈길을 사로잡는데 하루를 살아가는 개인의 현실은 굼벵이처럼 더디 바뀌니까요. 그런 괴리감 사이에서 결국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겨누는 것 같아요. 타인을 향한 맹렬한 분노도 어쩌면 내면에서 분출되는 자기혐오의 다른 감정일 수도 있고요.

벌써부터 세상을 다 살아본 애늙은이처럼 자포자기와 자기 연민 사이에서 무기력을 느끼고 있는 친구가 많습니다. 그들 눈에는 오히려 내일모레면 환갑인 제가 아직도 뭘 더 하고 싶은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한가 봐요. 꽤나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추측하며 물어보지만 오히려 저는 그 반대에요. 사람이 그렇게까지 고매하거나 멋지지 않다고 생각해요. 고매한 척하지만 고매하지 못하고, 멋있고 싶지만 누추하기 그지없는 게 사람이라고요. 그렇게 아예 눈높이를 낮춰놓으니 굳이 실망할 일도 없고, 크게 기대할 일도 없어요. 좋으면 기쁜 거고, 나쁘면 정상이라고나 할까요?

비관하는 젊은 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해줍니다. 인류라는 종족은 기대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더라고. 잘 안 돌아가는 인간사에 너무 실망하지 말고 사람들을 그저 '팬티 입은 킹콩' 정도로만 여기라고요. 그렇게 너그럽게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면 팬티라도 입은 그 킹콩이 때론 짠하고 가끔은 마구 칭찬해주고 싶은 날도 생긴다고요. 저의 황당한 조언을 듣고 몇몇 친구는 훨씬 마음이 편해졌대요.

완벽주의 근성이 있어서 평생 자신을 잡채면서 사는 친구들은 무턱대고 남들이 올려놓은 기준점을 이렇게 좀 더 현실적으로 내릴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목표가 낮아지면 노력을 안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입디다. 닿을 듯 말 듯 하니까 재미가 나거든요. 그게 바로 아직도 제가 웃으면서 뛰어다닐 수 있는 비결입니다. 아니, 얼마나 기특합니까. 겨우 팬티 한 장 걸친 킹콩인데!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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