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은의 러시아 그림이야기 앙코르] 이삭 레비탄의 가을
[김희은의 러시아 그림이야기 앙코르] 이삭 레비탄의 가을
  • 김희은
  • 승인 2020.10.07 0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금 가을’, 1884년, 이삭 레비탄(1860 – 1900), 캔버스에 유채, 82х126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황금 가을’, 1884년, 이삭 레비탄(1860 – 1900), 캔버스에 유채, 82х126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노랗게 익어 가는 들판이 물결칠 때/ 미하일 레르몬토프

노랗게 익어 가는 들판이 물결칠 때

신선한 숲이 바람 소리에 술렁일 때

뒷마당엔 빨간 나무딸기가 초록 잎의 달콤한 그늘로 몸을 감출 때

노을이 질 때나 아침이 금빛으로 다가올 때

향기로운 이슬을 머금고 덤불 숲 뒤에서

은빛 방울꽃이 안녕하며 고개를 내밀고 나올 때

찬 샘물이 어렴풋한 꿈속으로 생각을 빠뜨리고

계곡을 따라 춤추듯 흘러가며

그가 달음질쳐 온 평온의 세계에 대한 비밀스런 전설을 이야기할 때

그때 내 불안한 영혼은 달래지고

그때 내 이마의 주름살은 펴지며

이 땅에서도 나 행복에 이를 수 있고

하늘에서 나 신을 보네

 

러시아의 가을은 황금색이다

온 세상이 황금색으로 물들고 바람이 불면 황금색 낙엽비가 내린다. 그 풍경을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향연이다.

겨울을 맞이해야 할 러시아 가을은 비 오고 흐린 날이 대부분이지만 '바비요 레토 Бабье лето'라 해서 9월 말 10월 초 즈음해 아주 화사하고 맑은 가을날이 펼쳐진다.

바람은 상쾌하고 하늘은 높고 푸르며 대지는 고요하다. 러시아의 인디안 썸머다. 황금색 마술거울에 들어간 것처럼 온 세상이 노란색의 축제를 벌인다. 그 황금색의 잔치를 레비탄은 한 폭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바로 이 시기가 가장 아름다운 러시아를 볼 수 있는 시기이다.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러시아 사계 중 가장 찬란한 시기는 바로 졸로타야 오센золотая осень, 즉 황금빛 가을이다. 높고 푸른 하늘, 새하얀 구름, 대지를 가득 채운 황금빛 자연, 바로 색채의 축제는 이런 게 아닐까?

‘가을’, 1884년,이삭 레비탄(1860-1900), 종이에 아크릴 물감과 그래픽연필, 31.5х44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가을’, 1884년,이삭 레비탄(1860-1900), 종이에 아크릴 물감과 그래픽연필, 31.5х44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가을. 빛 바랜 내 동산 안/ 알렉세이 K. 톨스토이

가을.

빛 바랜 내 동산 안 누런 낙엽이 바람에 날고 있다.

짙푸른 곳은 저 쪽 골짜기 뿐

붉은 마가목 송이가 시들고 있다.

내 마음은 즐거운 한편 슬프기도 하다.

아무 말 없이 그대의 손을 쥐고 따스함을 느끼며

눈을 바라보면서 눈물 흘린다.

그대를 사랑한다.

그러나 표현할 방법을 모른다.

 

쓸쓸하다. 늦가을의 정취는 가슴을 텅 비게 만든다. 고즈넉하고 텅 빈 듯한 풍경은 인생을 느끼며 세상을 관조하는 법을 배우라 가르친다.

레비탄의 그림에는 그런 힘이 있다. 떨어진 낙엽과 고즈넉한 호수, 차분한 색조의 가을 하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집착하던 욕심을 놓게 된다. 겸허해진다. 바로 레비탄의 풍경화 <가을>이 주는 느낌이다.

사실 러시아의 무드 풍경화들은 러시아 클래식 음악이나 로망스와도 그 느낌이 너무 어울린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10월 ' 가을의 노래'를 들으며 레비탄을 보고, 러시아 로망스를 들으며 여름을, 겨울을 본다면 그 감흥은 몇 배나 된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이야기>(자유문고)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