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3년 전부터 갑자기 만남이 뜸해졌던 친구로부터 오래간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녀는 살아가는 일에 대한 미학적인 시선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인 생활감각을 놓치지 않던 친구였습니다. 늘 가치에만 집착하다가 종종 경제관념조차 희미해져버리는 저에게 자주 경종을 울려주기도 했었지요. 그렇다고 제가 그녀의 충고대로 변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람이 어디 옳은 말을 들었다고 금방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존재던가요.

그녀는 십 수 년 째 한 주일에 한 권씩 고전과 명작을 밥 먹듯이 뚝딱 읽어내는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문학인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남은 건지, 그렇게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글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저는 읽지 않고 쓰는 사람인데 그녀는 읽기만 하고 쓰지는 않는 사람인 거지죠. 그녀의 머릿속엔 저와는 달리 세월이 지나도 시들지 않을 고고한 문장들과 심오한 철학으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아요.

우리 둘은 어찌 저렇게 다른 이미지를 풍기는 두 사람이 같이 어울릴 수 있을까 남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색깔이 서로 달랐습니다. 저에겐 그녀의 말을 빌리면 너그러운 삶의 지혜가 있다고 해요. 나도 모르는 나를 좋게 봐주려는 그녀가 고마웠습니다. 저는 그녀의 저돌적인 추진력과 비교적 정확하게 판세를 읽어내는 현명함을 장점으로 꼽곤 했어요. 그녀는 종종 저의 황당무계하면서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 행보를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걸 또 저만의 매력이라고 했고요.

하지만 우리 둘이는 어느 날, 서로의 색깔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너무 가까이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걸 깨달아야 했습니다. 가까워서 부딪히다보면 저는 제 스타일을 구겨야 하고, 그녀는 그녀다운 모양새를 마음대로 활짝 펴내기가 어려워졌던 거죠. 어쩔 수 없는 이별이었다고 담담히 받아들인 저와는 달리 아마 그녀는 좀 더 오래 마음이 부대꼈나 봅니다. 매사에 정열적인 데가 있는 친구니까요.

그렇게 멀어졌던 그녀가 오랜 침묵을 깨고 드디어 전화기 속에서 말을 이었습니다. 가끔 제가 했던 말이 생각났대요. 누군가와 아무리 친해져도 그냥 옷 잘 갖춰 입고 분위기 있는 응접실에서 와인이나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정도로만 가까이 하고 싶다고. 친구라면 손잡고 목욕탕에 훌훌 벗고 들어가 서로 때라도 밀어주는 사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과는 정말 함께 하기 난감하단 그 말을 말이죠. 먼저 그럽디다. 이번엔 어디 분위기 있는 집에서 오랜 만에 와인이나 한 잔 마시자고요.

저 역시 너무 가까이 부대껴서 힘들었던 거지 그녀가 영 싫었던 게 아닙니다. 많은 매력이 있는 친구거든요. 부디 이번만큼은 서로간의 관계 거리를 잘 조정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약속한 날에는 예쁜 옷을 입고 화사하게 웃으며 나가야겠어요.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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