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서부터 꾸준히 시도해온 일이 하나 있다. 엄마가 늘 보호자로 집을 지킬 나이도 지났으니 이제부터는 한 달에 한 번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겠노라고. 나름 큰 결심이었다. 전에는 늘 동행이 필요했다. 여행을 좋아하니 만나는 사람과도 기회만 되면 여행을 가자고 꼬드기는 게 버릇이었다. 가족과도, 친정 식구와도, 친구들과도 언제나 먼저 여행을 계획했으니 자연스럽게 가이드 노릇까지 맡아야 했다.

처음엔 그것마저 즐겁더니 점점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같이 간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할까 봐 눈치를 보게 되고, 어떤 때는 같이 간 사람과 밤새 수다 떠느라 합숙 훈련처럼 되기도 했다. 동행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나의 여행도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혼자 여행을 시작해보자 싶었다. 젊은 사람들은 혼자서도 잘 떠나던데 왜 나만 이렇게 나이가 들고 나서도 홀연히 떠나기가 어려울까.

혼자 여행.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젊을 때는 처녀 혼자 돌아다니면 큰일 난다고 다들 말렸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중년 아주머니 혼자 빈방에 묵으면 자살하러 온 게 아닐까 싶어 숙소 주인이 신경을 쓴다는 소릴 들었다. 조금 더 홀가분 하려다가 남의 시선에 붙잡히면 기분만 망칠까 봐 굳이 나서기도 싫었다.

하지만 이젠 너도나도 혼자 다니는 시대다. 이참에 나이가 무기가 된 이 아줌마가 굳이 못 떠날 일이 무어랴. 좋아하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있어야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다. 되도록 혼자여서 못하는 일의 가짓수를 줄여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이 엄마의 간헐적 부재가 가족의 일상기술 능력을 재생시키지나 않을까 기대하는 바도 있었다. 엄마의 부재를 메우다 보면 가족끼리 소통과 협동 정신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별별 핑계를 붙여가며 별렀건만 막상 떠나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꼭 누가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때마다 주저앉았다. 아프신 부모님, 괴로운 수험생, 피곤한 직장인 사이에서 엄마 홀연히 여행을 떠난다는 자체가 괜히 미안했다. 눈치를 보면서 겨우겨우 함께 갈 사람이 생겼거나 핑계가 생겨야 슬쩍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다. 참 의아스러웠다.

왜 이렇게 붙들지도 않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는 걸까. 누구는 고생인데 나 혼자 좋을 수 없다는 일종의 의리와도 같은 죄의식이었다. 그런 논리라면 함께 할수록 더 힘들어지는 게 가족이었다. 나 혼자 좋을 날도 별로 없는데 다 함께 좋을 날을 위해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참아야 한다니. 고정관념의 올가미에 묶인 내가 답답했다. 그러면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행복의 교집합에 연연하지 말고 합집합을 늘려갈 수 있도록 서로 응원하자고.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며 조금씩 집 떠나는 연습을 했다. 십 년의 꾸준한 노력 끝에 요즘은 쉽게 길을 나선다. 부디 앞으로 10년은 더 그렇게 떠나고 싶을 때 혼자서라도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살고 있다.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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