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곡한 나무와 푹신한 낙엽 숲, 초록의 조릿대가 어우러진 환상조화는 사람이 있어 더 아름답다. 김인숙 (주)젤리피쉬월드 대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산우회장)
빼곡한 나무와 푹신한 낙엽 숲, 초록의 조릿대는 사람과 어우러져 더 아름답다. 김인숙 (주)젤리피쉬월드 대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산우회장)

[소셜타임스=김승희 기자]

운탄고도(運炭古道)-.

‘한국의 차마고도’인 운탄고도는 석탄을 운반하던 옛길이다.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고원의 길(雲坦高道)’이라고 알려질 만큼 아름답다. 해발 1100m가 넘는 운탄고도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만항재에서 신동읍 함백역까지 약 40Km에 이른다.

23일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산우회(회장 김인숙) 회원 20여 명은 ‘한왕용대장과 함께하는 생태산업유산 탐방 운탄고도 트레킹’에 참여했다.

“정선 지역의 산은 세계인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이 될 것입니다”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한왕용 (‘한왕용의 트레킹 이야기’ 대표)은 이같이 말했다. 한 대표는 운탄고도를 방문할 때는 손님처럼 즐기자고 당부했다. 산의 주인인 동·식물을 내쫓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지 말자는 얘기다. 아울러 수많은 산을 다녔지만 오늘처럼 머리를 말끔히 비운 적은 처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운탄고도가 그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뜻이다.

운치있고 맑은 운탄고도 하늘길...몸짓과 표정은 달라도 모두 행복한 모습이다. 사진=소셜타임스
운치있고 맑은 운탄고도 하늘길...몸짓과 표정은 달라도 모두 행복한 모습이다. 사진=소셜타임스

운탄고도는 아름답고 편안한 길이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탄광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면서 이 길은 잊혀졌다. 석탄 트럭이 멈춘 지 약 30년. 광산촌의 고단한 삶이 오르내리던 이 길에 힐링 꽃이 피고 있다.

이날 트레킹 코스는 하이원하늘길이었다. 하이원팰리스 호텔을 출발해 화절령에 이르는 약 6km. 탁트인 전망대와 테일러스 지형, 1177갱, 도롱이 연못 등을 지나 화절령으로 내려간다. 나무가 빼곡한 숲길과 깎아지른 벼랑 길이 반복되고 곳곳에는 광부들의 숨결이 쉼 쉰다.

평지에서 고도에 이르기까지는 약간 가파르다. 그러나 이내 하늘길과 만난다. 천상의 길이다. 해발 1100m 이상의 높은 길이라 한쪽 전망이 탁월하다.

김인숙 (주)젤리피쉬월드 대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산우회장)
김인숙 (주)젤리피쉬월드 대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산우회장)

숲길을 지나 벼랑을 옆구리에 끼고 걷을 때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까마득한 아래쪽에서 겹겹이 쌓인 산들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어디쯤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먼 곳의 산들은 안개를 품고 달려오고 있었다. 멈추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에 일행들은 발걸음을 뗄 줄 몰랐다.

이날 최연소 참가자인 맹지효(초교 3) 어린이도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라 힘들지 않고 좋아요”라고 할 정도의 편안하고 따뜻한 길이다.

길 곳곳에 검은 흙과 자갈이 뒤섞여 있어 석탄을 나르던 길이라는 게 실감 났다. “어머 석탄이야 석탄...” 누군가 외치자 일행은 검은 흙을 발로 비비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걷다 보면 감동이 하나씩 다가온다. 낙엽 더미 위에 하늘을 찌를 듯한 낙엽송들이 빼곡히 들어선 이국적인 풍경 앞에서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높은 하늘을 쳐다보며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켜도 좋다. 늦가을 정취와 낭만을 즐기다 보면 누구나 화보의 주인공이 된다.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별명을 지어주고 함께 부르며 즐거워했다. 힐링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빙하기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부서져 쌓인 돌들은 탑이 되었다. 사진=고금순 산업유통포장주식회사 대표

산사태가 난 줄 알았다. 1177갱도 근처 경사진 비탈에 돌들이 쌓여있었다. 테일러스 지형을 만난 것이다. 거대한 암석 봉우리가 빙하기 (4,000만 년~300만 년 전)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부서져 내린 돌들이 쌓였다. 누군가의 소망인 듯 돌탑은 작품이 되었다.

해발 1177m에서 궁금하던 갱도를 만났다. 1177갱. 동원탄좌 사북영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다. 동원탄좌는 최대 민영탄광으로 최대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정선지역 탄광 개발의 시발점이 된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캐낸 석탄을 트럭에 싣고 운탄고도를 따라 함백역까지 날랐다.

누군가 잠시 사진=소셜타임스
딸에게 주는 선물일까. 누군가 광부의 팔에 옷을 걸어 눈길을 끌었다. 사진=소셜타임스

막장을 체험해보겠다는 생각은 갱도에 막혔다. 진입을 막아 논 갱도 안은 칠흑같이 어둡고 갱도 앞에 서 있는 광부는 환하게 웃고 있다. 광부는 빈 도시락을 들고 퇴근하면서 어린 딸을 향해 손짓한다. 힘겨운 일에도 지친 내색을 하지 않는다. 갱도를 나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기쁨으로 가득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즐거운 길

아빠는 엄마에게 달그락 거리는 빈도시락을 건네주고

오늘은 암도 다치지 않았어 조금만 더 참읍시다

그러고는 하늘 높이 기운차게 나를 안아 올립니다.

그러면 나는 아빠 가슴에 안겨

탄가루 자욱한 얼굴을 자꾸만 자꾸만 문지르고

이윽고 검은 눈물이 아빠의 빰을 타고 방울져 내립니다. <김남주 ‘검은 눈물’중에서>

높은 산길에서 요들 송을 듣는 건 행운이었다. 에델바이스 요델클럽 멤버들이 갱도 앞에서 요들 송을 선사했다. 마치 스위스 알프스의 산정에 있는 듯했다.

1177갱도에서 화절령으로 1km쯤 가다 보면 연못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1970년대 탄광 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이라고 한다. 낙엽송 뒤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광부의 아내들은 이 연못에 살고 있는 도롱뇽에게 빌며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광부의 아내들이 연못에 서식하는 도롱뇽에 남편의 무사기원을 빌었다고 전해지는 도롱이 연못. 사진=소셜타임스

도롱이 연못 근처의 쉼터를 지나면 산은 고도를 낮춘다. 내리막길이다. 검은 흙과 자갈이 뒹구는 길. 폐광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길 옆에는 수직으로 잘려 시커먼 속살을 드러낸 산 위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생명의 위대함이다.

산우회 김인숙 회장은 하산할 때 등산 스틱 사용하는 법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정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삼탄아트마인이다. 함백산 자락 해발 832m에 위치한 삼탄아트마인은 2001년 폐광된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를 재탄생시킨 곳이다. 방치된 흉물에 예술을 입힌 우리나라 1호 예술 광산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최승준 정선군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최 군수는 야생화 피는 계절이 더 아름답다며 다시 한번 찾아주길 권했다.

삼탄아트마인 입구 맞은편에 자리한 갱도. 사진=소셜타임스
삼탄아트마인 입구 맞은편에 자리한 갱도. 사진=소셜타임스

삼탄아트마인은 노다지의 꿈을 안고 탄광으로 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4층짜리 삼탄아트센터는 삼척탄좌의 종합사무동을 활용했다. 광원들의 급여명세서 등이 그대로 보관된 자료실이 있고 1,000여명의 광원이 동시에 사용한 샤워실, 수직갱 운전실 등을 볼 수 있다. 1층 레일바이뮤지엄은 삼척탄좌에서 캔 모든 석탄을 집합시켰던 시설을 그대로 보존했다. 광원들이 작업용 장화를 씻던 세화장, 안전모에 달린 랜턴을 충전하던 방은 예술의 옷을 걸쳤다.

전시장 곳곳에 붙은 ‘안전게시판’ ‘아직도 담배 및 인화물질을 소지하고 입갱하십니까’ 등 당시 안전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석탄산업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삼탄아트마인을 나서는 순간 맞은편 갱도에 붙은 커다란 외침이 가슴에 꽂혔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

[삼탄아트마인 포토갤러리]

사진=소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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