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12월에는 얼렁뚱땅 친구와 이집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 년에 한 달은 나에게만 집중한다는 결심으로 몇 년째 실행해왔던 한 달 여행 프로젝트를 대신하는 일이었지요. 작년 초에 한 달 동안 뉴질랜드 여행을 흠뻑 하고 온 뒤로부터 저의 여행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 채워진 모양입니다. 사뭇 바쁘기도 했거니와 혼자만의 여행에 대한 열정이 별로 솟아나지 않아 머뭇거리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마침 친구에게 톡이 왔습니다. 이집트여행 같이 가지 않겠냐고요.

굳이 패키지여행이라고 해서 안 갈 이유도 없었습니다. 이집트라는 나라를 저 혼자 자유여행을 하기에는 요원한 곳이기도 했고요. 몇 해 전 단돈 65만원에 그 친구가 제안한 터키 여행을 뿌리친 게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있었어요. 이번에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떠나자 싶었습니다. 200만원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이집트를 속속 훑어주는 여행이라니요.

여행은 역시나 좋았습니다. 로마인 이야기나 람세스, 고대 역사의 배경으로 신비롭게만 상상하던 이집트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지금 이집트는 글쎄 뭐랄까. 인류 유산이 곳곳에 흩어져있는 거대한 공사판 같아요. 관광 수입으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나라 전체가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정치만 좀 안정되면 충분히 경쟁력이 생길 것 같아요. 이집트를 멀게만 생각했는데 가서 보니 어릴 때부터 성경으로 접하던 애굽땅이기도 했어요. 비현실적인 구약성서가 옛날이야기처럼 확 다가왔지요. 황량한 사막과 조랑말, 낙타, 신전 앞의 상인도 미리 아는 것처럼 낯설질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역시나 패키지여행 스케줄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한 달을 집 떠나서 돌아다녀도 끄떡없던 제가 이번 여행을 끝내고는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빠지는 거 없이 두루두루 가본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러기 위해 매일 강행군을 해야 했거든요. 주마간산으로 훑고 다니느라 제 마음도 도시락처럼 들고만 다녔었나 봐요. 돌아와 보니 어디 한 군데 오롯이 마음으로 깊이 즐긴 데가 없는 거예요. 희미한 이야기는 먼지처럼 날아가고 여행 사진만 핸드폰에 낙엽처럼 수북이 쌓였습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더라는 말이 꼭 맞더군요.

어쩌면 제 사는 꼴도 이와 비슷하지 싶어요. 정신없이 사는 중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느라 얼마나 건성건성 살아왔을까요. 뭘 잘라내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아는 인연들이 생기는 데 비해 저의 용량 한계치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그 모든 걸 왜 그리 시간을 들여 기록에만 열중했는지. 그런 와중에 마침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태 썼던 그 많은 글은 남겨둔 채 가장 길이가 짧은 생각 메모만 모아서 내기로요. 제목도 제법 의미심장해요. 「50이면 그럴 나이 아니잖아요」.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더 저를 돌아봐야겠습니다. 가성비의 유혹에 붙들려 아직도 필요 없는 욕심을 내고, 성과에만 집중하면서 사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말이에요, 정말이지 이제 50이면 그럴 나이 아니잖아요.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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