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다 보니 저희끼리 만나 제일 신나게 떠드는 이야기 주제가 이 엄마 흉보기입니다. 자기네들 어렸을 때 제가 돌보는 자로서 얼마나 행패를 부렸는지 속속들이 까발리는 거지요.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말도 못 해요. 밥 먹이며 입가에 묻힌 국물을 휴지로 닦아주는 대신 숟가락으로 긁어 올리며 떠먹여 주던 감촉까지 생각난대요. 정말 싫었는데 아가 입장이라서 차마 말을 못 하고 당했다면서. 티끌만한 기억의 조각을 떠올릴 때마다 맞아맞아를 연발하며 저희들은 이 나이든 엄마를 곯려 먹는 재미에 시시덕거리느라 여념이 없어요.

옆에서 따라 웃는 제 속이 마냥 좋을 리만 있겠습니까. 어머 그랬어? 진작 말하지, 몰랐네. 클클클. 이 정도로 쿨한 반응을 한 번 보였다가는 그다음부터 거침없이 엄마 성토대회가 이어집니다. 대충 말해놓고 잘못 알아들었다고 화내던 엄마. 거짓말 아니었는데 남의 말만 듣고 거짓말한다면서 야단치던 엄마. 피아노 선생님 오기 전에 연거푸 세 번은 안 틀리게 쳐놔야 제대로 숙제 한 것이라고 우기던 엄마. 자꾸 틀리는 구구단을 하룻밤 만에 완벽하게 외우라며 끝없이 '다시!'를 외쳐대던 사감 선생 같던 엄마. 저도 한창 시절엔 그렇게 빡빡하고 엄격한 구석이 있긴 했죠. 슬며시 부끄러워져서 앞으로는 제발 그런 나쁜 기억을 지워버리는 약이 발명되었으면 좋겠다고 빌어요.

거기서만 끝이 나면 다행인데 이젠 아예 엄마의 무심한 성격을 거론하기에 이릅니다. 알뜰살뜰 보살펴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 직장도 안 다닌다더니 정작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에도 학교에 우산을 가져다준 적이 없었대요. 집에 와보면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낄낄거리던 엄마가 생쥐처럼 비 맞고 들어서는 자기를 보고 오히려 '지금 밖에 비 오냐?' 하면서 더 놀라기 일쑤였다고. 미안해하기는커녕 금방 또 이런대요. 괜찮아 그깟 비 좀 맞는다고 안 죽어! 한 소리 끝나기 무섭게 또 한 놈이 거들어요. 그뿐이냐, 엄마는 마요네즈를 안 먹는 자기한테 스무 살 때까지 마요네즈에 버무린 ‘사라다빵’을 간식으로 만들었다고 먹으라고 권하는 무관심의 대명사래요. 맞아, 맞아. 쿵짝이 또 맞아요. 엄마는 요즘도 콩나물 싫어하는 자기한테 매번 콩나물밥 해 먹자고 한다면서.

제 표정은 이쯤에서 슬슬 굳어집니다.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요즘은 컸다고 모였을 때마다 저희가 당했던 구구절절한 이 엄마의 표리부동한 사연을 팔만대장경처럼 새길 기세로 덤벼드니 울컥 섭섭해지지 뭡니까. 에이구,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여. 이런 나쁜 노무 스끼들! 기껏 키워주니까 모여서 한다는 소리들 하고는. 물에 빠진 거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놈들이여, 니들이! 쌩하니 차가워지는 제 기색을 느꼈는지 아이들이 금방 방향전환을 하며 눙치고 나옵니다. 아이 엄마 왜 그래. 엄마는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있는 아줌마라니까. 그러고선 디저트 삼아 칭찬할 거리를 하나씩 찾아 감사의 덕담처럼 베풀고는 서둘러 성토대회를 마무리합니다. 마치 아이 취급을 받는 기분이에요.

은근히 괘씸해서 혼자 씩씩대다가 그냥 픽 웃어버렸습니다. 제가 엄마에게 했던 일이 생각나서요. 저도 꼭 그랬거든요. 엄마, 늦게나마 미안해요.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저작권자 © 소셜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