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50이면 그럴 나이 아니잖아요」라는 저의 산문집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치열하게 준비해서 교정까지 마무리한 수백 페이지의 원고 다발 속에서 출판사와 최종 계약을 하게 된 원고는 가장 힘 안 들이고 매일 메모처럼 끄적끄적 쉽게 써놓았던 글이었습니다. 작가가 되려면 모름지기 밥 먹는 것처럼 매일매일 글을 써야 하지 않겠냐는 결심으로 몇몇 글 친구와 하루에 한 가지씩 생각을 소재로 하는 글을 올리자고 약속했던 끝에 모아진 원고입니다.

매일 올려야 한다는 목표에만 집중하느라 내용에 대한 깊은 고민보다는 쓴다는 행위 자체의 실천에 급급했어요. 창작이라기보다는 기록에 가까웠고요. 출판사 대표는 오히려 그런 게 더 좋대요. 뭔가 의도를 가지고 과하게 다듬으려고 고생한 문장보다 일상처럼 담백한 필체라서 마음에 든다고요. 너무 많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젠 책이 꼭 정보와 지식의 전달자인 것만은 아닌가 봐요. 책장을 넘기며 혼자 시간을 갖는 행위 자체가 복잡한 머리를 잠시 쉴 수 있는 여유로움의 상징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렇듯 작가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글을 쓴다는 것'과 '책을 낸다는 것'은 하나의 프로세스로 엮여 있지만 전혀 다른 욕망의 부딪힘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자기 안에서 형상화되고 싶어 소용돌이치는 생각의 바다에서 문장을 길어 올리려는 창작자들에겐 말이죠. 간혹 작가가 되고 싶다는 분을 만나면 저는 이렇게 되물어요. 글을 쓰고 싶은지 아니면 책을 내고 싶은지를요. 대답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하지만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한 번쯤은 꼭 우선순위를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야 노선이 정해지고 다음 행보를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행위, 즉 창작의 즐거움에 우선순위를 두는 분들과는 매년 독립작가 과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100일간 매주 한 꼭지씩 글을 써서 각자 한 권의 책을 소장용으로 만들어내는 거죠. 굳이 모임까지 하기 벅찬 사람에겐 온라인으로 글만 받을 때도 있고 콘셉트를 못 잡는 분에겐 따로 1:1 상담을 해주면서 전체 일정을 맞춰나가요.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다 써놓고 나서도 원고를 다시 볼수록 고칠 부분이 새로이 눈에 보이니 자괴감도 생기고요. 여러모로 혼자서는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분야지요.

이 과정을 진행하는 대표 작가로서 제가 하는 역할은 남의 글을 일일이 손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진도를 맞추면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써놓았던 원고 중에 매번 한 권의 책으로 묶을만한 것을 골라 하나씩 샘플북으로 완성하게 되지요. 저 역시 게으름을 떨치고 작가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나름대로 동기 부여 장치를 고안해놓은 셈이에요. 그러다 이번처럼 출판사와 연결되는 행운이라도 생기면 금상첨화가 됩니다. 작가라면 글을 쓰는 것도 즐겨야겠지만 결국은 책을 내야 힘이 생기니까요. 당분간 유명작가까지는 아니어도 민폐 작가는 면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결국 이 또한 동전의 양면이긴 하네요.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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