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고?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순간 혼란스러웠다. 남을 사랑하려면 나를 희생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이기적인 마음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 해롭지 않고 유익한 영역과 범위를 확장해보면서 이해가 될 수 있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만 사랑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건강할 때만이 가능하다. 부모의 몸을 통해 하늘로부터 부여된 자신의 몸과 영혼을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남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존재에 대해서도 함부로 할 확률이 높다. 그런 행동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생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할 뿐만 아니라, 내가 확대된 것이 가족이고, 가족이 확대된 것이 이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함부로 한다는 것은 어떤 행동이나 생각이 유익한 것인지? 해가 되는 것인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때그때 균형 잃은 감정과 욕구에 맹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막사는 것’이다. 잘못된 욕구나 감정의 노예가 되는 삶이다. 마약이나 도박, 과음이나 폭행 등 이런 것들을 평소에 절제하지 못해 중독이 된다거나 전염병 예방에 무신경하거나 객기를 부려 평생을 고달프게 사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남의 사례를 보고 상상을 통해 자신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고등동물과 하등동물의 차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산속에 방치하면 어느 동물보다도 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이렇게 가장 약한 인간이 모든 동물을 지배하면서 살 수 있었던 힘은 바로 함께 사는 지혜와 공동의 안전 망을 구축하는 안목이었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통찰이었다. 결국 나와 남은 분리될 수 없는 연결된 존재라는 것이다. 혼자만 너무 잘나서 높은 담과 CCTV를 설치한다고 해도 몸은 지킬지 몰라도 마음까지 지키지는 못한다. 인공위성과 미사일을 쏘아대는 군사력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는 무력함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최근 우한 폐렴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이때, 자신이 감염되었는지 검진을 자처하고, 또 증상이 있을 때, 불편함을 무릅쓰고 보건당국에 스스로 신고하여 스스로 격리되는 모습은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남을 사랑하는 것을 한 번에 실천하는 좋은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격리시설에서 불편함을 잘 견디고 잘 치료되어 음성 판정되어 출소하거나 퇴원하는 여러분께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함께 기뻐한다. 떠나는 교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관광하러 또 놀러 오시라”고 하는 지역주민의 따뜻한 환송의 모습은 굳어진 우리의 마음을 순간에 녹여주고 있다. 행여나 추가로 바이러스감염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나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슴지 말고 스스로 신고하고 스스로 격리되어 더 이상의 폐렴확산을 막아 우리모두의 안전 망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고 높은 시민의식이 뿌리내려지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마음감옥에서 탈출하는 열쇠꾸러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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