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왜?’ ‘무슨 일로?’ 제주에 한 달 동안 가 있을 거라고 선언한 후 주위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그들은 쉽게 이해할만한 적절한 답을 원했습니다. 거기에 우물쭈물 ‘그냥’이라거나, ‘가고 싶어서’라던가, ‘답답해서’ 정도의 같잖은 핑계를 댔다가는 여지없이 구박을 받는 거지요.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괜히 한 번씩 건너다보면서 그렇게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바람났냐는 힐난도, 팔자 좋다는 비아냥도, 떠나지 못하는 자의 부러움마저도 반복되니 조금씩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대답이 난처해서 장황한 변명을 하게 됩니다. 제주도에 있는 아들을 보러 간다거나, 숙소를 따로 얻지 않아도 기거할 곳이 생겼다거나, 공식 일정이 없는 동안 꼭 마무리할 개인 작업이 있다는 식의 구차한 이유 말이에요.

프리랜서의 삶이란 마치 껍데기 없는 민달팽이와도 같아요. 남들에게 자기 행동을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 곤란할 때가 참 많습니다. 노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경계의 탐색과 실험, 당장 그만두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개인창작 활동, 움직일 때마다 경제 이득은커녕 오히려 모아놓은 자금을 야금야금 쓸 수밖에 없는 일이 너무도 당연한 상태니까요. 그렇기에 더더욱 쪼그라들며 ‘돈 안 되는 일’에 분주한 본인의 민망스러움을 가려보려고 애쓰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당당해지자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초연결사회와 보통사람의 시대」를 읽고 있던 참이었으니까요. 이 책의 부제 또한 기가 막혀요. ‘대량실업을 넘어 완전실업으로’라니요. 조만간 백수의 시대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노동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면 더 획기적으로 그 변화가 빨라지겠죠. 그렇다고 할 일이 온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랍니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좀 더 보람 있고 자유로운 활동을 적극적으로 찾아낼 거라더군요. 철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일’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죠. 물론 어느 시대나 빈둥거리는 사람이야 있기 마련이고요.

기업의 지시에 따라 일방적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움직이는 자립적 프리랜서들이 고용시장의 외연에서 기존의 ‘노동’을 ‘일’로 전환하는 전방위 역할을 하게 될 거라는 거죠. 이렇게 제 눈에 쏙 들어오는 글을 읽고 나니 그간 답답하던 속이 좀 풀렸습니다. 당장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무슨 일만 시작하려면 그게 돈이 되냐 안되냐로 남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고, 돈 버는 일 아니면 그 즉시 노는 것으로만 치부되던 그 숱한 순간에 약간의 위로는 되더군요.

어차피 제 나머지 인생도 결국 지금 방식처럼 채워나갈 거니까요. 이미 오래전부터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어떤 게 나다운 일일까를 우선순위에 두고 수많은 갈림길을 선택했고 그런 여정을 제 나름대로 ‘아티스트웨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이 길에서는 불확실한 것에 매달리는 막연한 불안과 동시에 세상과 마주하는 힘의 매력을 동시에 느끼곤 합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불가피하게 더더욱 동행자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이참에 각자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내느라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민달팽이 같은 삶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봐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다 사는 ‘일’이잖아요.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50이면 그럴 나이 아니잖아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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