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칼럼] 즐거움(樂)과 괴로움(苦)
[윤영호 칼럼] 즐거움(樂)과 괴로움(苦)
  • 윤영호
  • 승인 2020.06.0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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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이 땅에서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현실적이 두 축이 있다면 다름아닌 즐거움(樂)과 괴로움(苦)이다. 누구나 즐거움, 즉 행복은 좋아하고 고통은 싫어한다. 왜 그러느냐고 따질 수 없다. 쾌락이 좋고 고통이 나쁘다는 것은 그걸 그냥 느끼는 것이지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천국도 행복하기 위해서 추구하는 것이고 지옥도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서 기피하는 것 아닌가? 그러기에 즐거움과 행복은 최후의 목적이지 그 다른 무엇의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즐거움은 지속될수록 점차 그 느낌이 줄어들어 행복한 줄 모르게 되지만 고통은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기에 우리 삶에서 쾌락보다 더 심각하게 작용하는 것이 괴로움이다. 오죽하면 자살하는 사람이 고통보다 죽음을 택하겠는가? 비싼 음식은 못 먹어도 살지만 아픈 것은 견딜 수 없다. 예쁜 옷은 안 입어도 살지만 추운 것은 견딜 수 없다. 조금 가난한 것은 견디겠지만 억울한 것은 참기 어렵다. 그래서 쾌락을 추구하는 것보다 억울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에 일찍이 고타마 싯타르타가 인간 삶에 있어서 고통을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삼아 그것의 발생원인과 소멸과정을 분석했다고 하는 것은 종교차원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위대한 선각자라 아니할 수 없다.

옛날에는 태풍이나 홍수 등 눈에 보이는 자연이 인간을 고통스럽게 했다. 거대한 자연의 힘을 막을 길 없는 약한 인간은 샤머니즘적인 주술을 통해 마음을 위로 받고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려 했다. 지금은 더 확실하게 발전된 과학기술이 그 주술의 기능을 대체하여 왔기에 자연이 주는 고통은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일시적으로 전염병이 발생한다 해도, 결국 치료제나 백신의 개발로 인해 언젠가는 해결하게 되는 것이 과학기술의 발전과정 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인간이 겪는 고통이 그만큼 없어졌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자연이 주는 고통이 줄어든 이상으로 인간이 주는 고통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과학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나 홀로 살수 없는 세상이 되었기에 사람이 주는 고통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실존의 문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통이라는 것은 전혀 무익한 것일까? 니체는 그렇게 봤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고통은 잘못된 것을 고치라는 산 자만의 시그널이다. 병이 났을 때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병원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죽게 된다. 암이 무서운 것은 평소에 아픔을 느끼지 못해서 죽게 될 때까지 방치하므로 인해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통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이 주는 고통에 초점을 맞춰본다.

오늘날 인간이 겪는 고통의 4/5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해지는 고통이라고 C.S루이스는 지적하고 있다. 고통의 진원지가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과 뻔뻔함, 그리고 끝없는 경쟁심이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기에 자연이 가하는 고통보다 인간이 주는 고통이 훨씬 더 억울하다. 불평등과 불공정, 혹은 공정한 제도일지라도 불공정한 집행으로 인해 가해지는 억울함과 박탈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컨대, 힘있는 강자가 제도권에서 이해될 수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생겨나듯이 강자가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고도 상응하는 고통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서 떳떳할 수 있다는 것은 정의가 파괴되었다는 증거다. 공정과 정의가 파괴되면 반드시 억울한 사람이 생긴다. 억울한 사람은 반드시 고통을 느낀다. 고통의 몫은 결국 약자 몫이다. 지금 지구촌 어디에서든 힘없는 약자라는 이유로 불편부당한 고통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 사람의 절규나 신음소리가 들린다면, 그 어떤 시그널로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질병이 치료를 요하듯이 고통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병리현상이나 잘못된 제도와 관행, 그리고 개인의 악행은 반드시 고쳐져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마음감옥에서 탈출하는 열쇠꾸러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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