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며칠 전, 미술대학원에 다니는 딸 아이의 SNS계정에서 우연히 생각이 많아지는 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자기에게 좋은 선생님이란 한번이라도 자신의 잠재력을 믿어주고 자기 작업을 좋아하고 눈여겨 보아주는 선생님이었다는 내용이었죠. 학기마다 공식적으로 학우들 앞에서 자기 작업을 설명하고 교수에게 신랄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크리틱’ 시간을 끝낸 직후에 써놓은 글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조금 아팠어요. 인생의 대부분을 학교 담장 안에서 지내야만 했던 세대여서 그 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예술가란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면서 꾸준히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야 하는 길에 서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욱 자기 작업을 속깊이 인정하고 좋아해주는 사람에 의해서 힘을 얻게 되나봐요.

돌아보면 저 역시 언제나 나를 신뢰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었던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눈여겨 보아주는’ 이라는 구절에서는 조금 멈칫거려졌습니다. 콩나물시루같은 교실 선생님은 물론이요, 늘 저에게 신뢰와 인정을 보내셨던 부모님마저도 그런 수준의 섬세한 눈여김에는 취약하셨던 것 같아요. 저분들이 보내는 응원과 신뢰가 어떨 땐 조금 의례적이면서도 건성이라는 발칙한 의심을 해봤으니까요. 어린 나에게 혼자 잘 할 수 있도록 아주 효율적인 자기조절 장치를 달아놓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 서운하기도 했고요. 그만큼 제 일상과 생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고, 늘 바쁜 탓에 누굴 눈여겨 볼만한 시간조차 없었던 거죠.

부모님이 생각하는 제가 진짜의 나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부모님과 나눈 추억은 공유할 수 있지만 성인으로서 지금을 나누기는 어렵겠다는 벽을 느끼곤 하는데 그게 어쩌면 서로에게 이런 ‘눈여김’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싶어요. 이럴 땐 자기가 추구하는 비슷한 분야에서 만나게 되는 선배나 선생님이 얼마나 구세주 같겠어요. 서로 깊은 부분까지 알 수 있는 동질적 경험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데다가 같은 분야에서 먼저 인정받고 있는 사람에게서 관심과 애정을 받으니까요. 그런 게 진짜 좋은 선생님 역할이겠죠. 그런 관계가 형성된 후에 받는 질책과 조언은 아프지도 않을 거 같아요.

아이가 말하는 좋은 선생님의 기준에 저절로 부모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저는 부모 역할도 인생선배나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나봅니다. 먼저 산 사람으로서 어떻게 자신을 지키면서도 세상을 건강하고 유쾌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그런 노력을 곁에서 자세히 보여주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으까요. 엄마지만 여전히 제 안에서는 본보기가 되려고 애쓰는 선생님 기질이 이렇게도 농후합니다. 그게 저예요. 좋은 선생님다운 엄마가 되자면 그 아이 인생 전체를 눈여겨 보면서 잠재력을 믿어주고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는 것이 최선이겠구나 싶습니다. 딱히 그랬던 것 같지 않아서 조금 뜨끔했습니다.

결국 좋은 선생님이란 존경과 신뢰를 얻을수 있을 만큼 자기를 연마하면서도, 제자들을 눈여겨 보고 그 특유의 매력을 발견해 키워줄만한 정성스러운 시간을 기꺼이 투자하는 사람이겠지요. 그것도 안되는 사람이 교단에서 자기 학식을 무기삼아 권위있는 독설로 어린 싹을 짓밟으면 안됩니다. 자기 사는 데 바빠 믿음과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시간을 못내겠거든 그냥 덕담만이라도 해주는 게 차라리 낫습디다. 먼저 살아본 부모로서도 그런 지점에서는 특히 더 조심해야겠어요.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50이면 그럴 나이 아니잖아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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