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필자가 회사 구매책임자로 있을 때의 일이다. 회사의 생산원가 절감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인지라 같은 품질의 원재료라면 보다 저가로 구매하는 것이 회사 정책에 부합되는 일이기에 기존에 납품 받던 회사와 동급의 다른 회사를 경쟁 시키기로 했다. 기존의 A사와 동급의 B사재료제품 샘플을 공장 품질관리와 자재파트에 보내어 원재료 품질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그 결과 품질관리(QC)에서는 ‘이상 없음’으로 판정이 내려도 자재파트에서는 생산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이런저런 핑계와 흠을 잡아서 번번히 거부했다. A사에 대한 맹목적(?)충성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는 직감으로 ‘보이는 손’으로 대응키로 했다. 본사 임원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극비리로 A사재료와 B사재료에 용기와 포장을 서로 바꾸어서 공장으로 내려 보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자재파트에서는 예전과 다름없이 A포장의 재료는 극찬하고, B포장의 재료는 쓸 수 없는 것으로 보고했다. A사와 유착된 개인이권에 눈이 먼, 묻지마 판정, 무조건 배척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 버나드 쇼의 일화다. 어느 날 버나드 쇼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무조건 좋아하지만 로뎅의 작품이라면 무턱대고 혹평하는 당시 미술 애호가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데생작품 한 점을 손에 쥐고 그들 앞에 흔들며 말했다.

“제가 최근 입수한 로뎅의 그림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술애호가들의 혹평과 험담은 시작되었다. 말발 센 어느 한 사람이 험담을 하면 그와 한 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경쟁적으로 그림의 흠을 들추어내기 시작했다. 험담이 들끓는 순간, 버나드 쇼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그들 험담의 한 복판을 겨냥해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아~~ 미안해요. 제가 그림을 착각했네요. 이 그림은 로뎅의 것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작품입니다.” 이 한마디가 뒤엉켜있던 험담을 한 순간 머쓱하게 잠재웠던 것이다.

전자는 개인의 이해관계 때문에 회사의 이익을 좀먹는 ‘묻지마 배척’이고, 후자는 표준품이 있는 공산품도 아닌 창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무리에 영합하는 묻지마 편견’이라 할 것이다.

이런 현상, 즉 ‘이권’과 ‘대중의 감정 쏠림’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선동하는 정치귀재들(?)이 오늘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는가? 옐리네크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 했다. 그 말은 법은 최소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말이다.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법망만 피하면 그만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도 때가 있다. 진영이 분열되고 고착화되면 ‘옳고 그름’은 없다. ‘네 편 내편’ 만 있을 뿐이다. 상대방에게 악마 편집하여 붙여놓은 ‘프레임의 이름’ 이 개념 없는 무리를 ‘묻지마 편가르기’로 이끄는 마법의 주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때를 분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마음감옥에서 탈출하는 열쇠꾸러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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