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음식문화기행 그릭조이’를 펴낸 그릭조이 전경무 셰프가 출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폴라갤리 대표 이보라
‘그리스 음식문화기행 그릭조이’를 펴낸 그릭조이 전경무 셰프가 출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폴라갤리 대표 이보라

[소셜타임스=최희주 기자]

신화와 철학의 도시 그리스. 나훈아가 외치는 ‘테스형’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수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그리스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있다. 장수국가다.

세계 5대 장수촌에 속하는 그리스 이카리아섬에는 건강한 노인들이 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 많은 연구가들은 장수 비결 중의 하나로 음식을 꼽는다. 이 섬에 특별한 음식이 있는 걸까. 장수 비결은 뭘까.

서울 합정동에서 그리스 음식점 ‘그릭조이’를 운영하는 전경무 셰프가 그리스의 장수 레시피를 찾아 나섰다. 그가 장수 음식을 찾아 지난해 그리스를 3주간 누빈 ‘그리스 음식문화기행 그릭조이’(모두북스)를 펴냈다.

이 책은 에피타이저인 이스탄불을 거쳐 메인 디시인 아테네와 그리스 남쪽의 크레타, 산토리니, 미코노스, 이카리아 등 4개 섬에서 장수 음식을 찾아 발품 판 이야기를 담았다. 현지에서 촬영한 음식 사진과 직접 그린 삽화도 곁들였다.

‘조르바’라는 별명을 가진 전 셰프는 그리스 음식과 20여 년을 함께 살았다. 그가 운영하는 그릭조이에 들어서면 산토리니가 눈앞에 펼쳐진다. 정면에 보이는 벽면을 산토리니 사진으로 채웠다. 흰색과 파랑의 조화. 담백하다.

그리스 음식기행에서 직접 스케치한 삽화와 음식 사진들도 한쪽 벽면에 자리잡았다. 지난 27일 열린 작은 출판기념회에서 전 셰프는 삽화와 사진에 대한 스토리를 소개했다. 수준급의 그림 솜씨는 어릴 때 만화방에서 살다시피한 덕분이다.

전경무 셰프가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삽화와 사진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폴라갤리 대표 이보라
전경무 셰프가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삽화와 사진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 셰프가 그리스 여행을 떠난 건 지난해가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장수음식을 찾겠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음식의 맛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장수촌의 레시피를 배워올 요량이었다. 그렇다 보니 음식을 마주하는 느낌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리스에서 먹어 본 음식은 모두 맛있었다”면서 “크레타섬의 칼라마키 해변에서 맛 본 ‘수주까끼아’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수주까끼아는 고기 완자와 토마토소스가 주 재료인 그리스 식 미트볼이다. 현지에서 먹어 본 ‘문어 파스타’는 직접 만들어서 손님 테이블에 내놓을 생각이다.

‘아테네의 홍대 앞’인 플라카 지역에서는 ‘타나시스 케밥’도 인상적이었다. 피타빵에 수블라키를 올려 짜지카 소스로 덮은 음식이다. 피타빵이 약간 두툼해서 식감이 좋았다고. 전 셰프도 매일 피타 빵을 만든다. 전 셰프가 만들어 갓 구워낸 빵은 추가 주문이 이어질 정도다.

음식문화도 엿볼 수 있다. 그리스는 ‘메제(Meze)’라는 문화를 즐긴다. 메제는 술 한잔하면서 먹는 간단한 술안주 정도의 음식이다.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전 셰프는 “음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때 방문해도 기꺼이 시간을 내주면서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문화’가 중요하고 특별하다”고 말한다. 그리스에는 ‘메제’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있다. 빵과 소스류가 대표적이다. 정어리 튀김, 엔쵸비, 시금치 파이, 수블라키 등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유명한 맛집과 사람이 북적거리는 식당 등 수 많은 음식점을 방문했지만 장수 음식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본인이 쓴 책의 출판기념회 날도 요리를 하느라 분주한 전경무 셰프. 사진=폴라갤리 대표 이보라
본인이 쓴 책의 출판기념회 날도 요리를 하느라 분주한 전경무 셰프.

이 책은 음식 얘기뿐만 아니라 그리스 사람들의 문화와 일상 등 소소한 일들도 재치있고 맛깔스럽게 엮었다. 아테네가 내려다보이는 아크로폴리스 바위 언덕에서 사진을 찍는 척하면서 가슴을 반쯤 드러낸 여인을 훔쳐보는 뭇 사내들, 미코노스에서 누드촌인지 모르고 옷을 입고 배낭을 맨 채 물속에 첨벙 들어갔던 에피소드 등은 양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먼 친척뻘 되는 요르고스 카잔차키스와의 대화는 잠시나마 철학 속으로 빠지게 한다.

요리에 입문한 지 20년 만에 요리 겸 여행책을 낸 전경무 셰프는 그리스인의 느긋함을 닮은 듯하다. 매사에 서두름이 없이 차분하다. 여유가 넘친다. 그래서인지 전 셰프는 늘 꿈을 꾼다. 대학에서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원자력 분야 엔지니어로 15년간 일했지만 적성에 맞이 않아 고민 끝에 이민을 떠났다. 이후 토론토에서 그리스인에게 전수받은 비법으로 5년여간 음식점을 운영하다 국내에 정착했다.

전 셰프는 화제의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영어 단어를 요리하듯 분해한 책 ‘영어 단어 외우지마’를 출간해 큰 인기였다. 영어책을 내고 난 후 주변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요리책은 못 내겠느냐”며 옆구리를 찔렀다. 갤럭시 탭 자판기를 두드리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전혀 다른 장르를 넘나들며 평소 실력을 뽐내고 있다.

드라마틱한 인생이지만 전 셰프는 아직도 꿈을 꾼다. 늘 도전하면서 새로운 일을 찾는다. 내년에는 이스탄불에서 열차를 타고 그리스 북쪽을 여행할 생각이다. 그러나 이어질 책은 의외다. 요리 레시피나 음식기행이 아니다. ‘영어 단어 절대 외우지마 접미사 편’을 준비 중이다.

 그림을 곁들인 전경무 셰프의 사인이 독특하다. 사진=폴라갤리 대표 이보라
 그림을 곁들인 전경무 셰프의 사인이 독특하다.

그리스 장수음식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음식점들의 메뉴판에서 ‘장수’라는 단어를 찾았고, 현지인들을 통해 수소문했다. 산속의 외딴 음식점을 찾아 낭떠러지를 끼고 난 좁고 위험천만한 산길을 마다않고 달렸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장수 음식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세계의 장수촌인 이카리아섬에서도 장수 레시피는 따로 없었다. 이카리아 섬에 특별한 장수음식은 없다고 잘라 말하는 토박이 노인의 한 마디에 전 셰프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했다.

노인은 '테스형'처럼 말했다. 장수는 음식이 아니라 장수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그러면서 이카리아의 장수 레시피 3개 중 2개를 귀띔했다.

전 셰프는 “그리스 장수 레시피를 구해오는 것이 목표였지만 대신 마음의 장수 레시피를 배웠다”며 “그리스 음식 전체가 장수 음식이라는 걸 깨닫았다”고 털어놨다.

그리스 정통 음식의 특징은 신선한 식재료와 담백한 맛이다. 눈앞에 넘실대는 푸른 지중해와 신선한 공기가 버무러진 일상이 최고의 ‘장수 레시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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