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칼럼] 외로움은 극복하고 고독은 익숙해라
[윤영호 칼럼] 외로움은 극복하고 고독은 익숙해라
  • 윤영호
  • 승인 2020.11.28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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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혼자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게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다. 혼자 있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 모습인 고독에 낯설기 때문이다.

고독(孤獨)과 외로움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영어에서 고독을 뜻하는 단어, Solitude는 자기 뜻에 의해 자발적으로 혼자 있는 것이기에, 반드시 외로움(loneliness)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뉘앙스가 다른 용어다. 외로움은 허전하다는 감정이지만 고독은 혼자 놓인 순백한 상태를 뜻한다.

고독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다. 외로움은 자기중심을 잃어 흔들리는 것이지만 고독은 자기중심을 잡아 굳건히 서는 것이다. 그러기에 외로움은 밖에서 위안을 찾아 허전함을 채우려는 욕구지만 고독은 자기 내면 안으로 들어와 영혼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탐색이다.

사람은 혼자 일 때 외로워지기 십상이지만, 그 외로움을 잘 극복하고 마음의 번뇌가 정화될 때에는 나 자신의 본래 모습, 즉 고독이라는 순수한 상태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혼자 태어나 잠시 섞여 살다가 결국 혼자 마감하는 인생의 기본 구조 속에는 필연적으로 고독을 품고 있다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혼자라도 자유 할 수 있어야 함께 라도 행복할 수 있다. 혼자 설수 없어서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함께하는 상대를 지나치게 간섭 또는 지배하려 할 때는 서로가 속박이요 구속이다. 내 맘대로만 되려면 상대가 부자유해야 하고, 내 맘대로 안되면 욕구불만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실존은 관계 속에 있지만 엄밀히 말해 혼자다. 그러기에 혼자서도 충만할 수 있지만 군중 속에서도 외로울 수 있다. 사람이 적당히 떨어져 있지 못하고 너무 붙어있으면 살 수 없다. 극단적인 예컨대, 몸의 일부가 한데 붙은 ‘샴쌍둥이’ 는 살아가기 힘들다. 그러므로 죽기를 각오하고, 살기 위해서 그 어려운 수술을 하는 것이 아닌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엄청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존재한다. 그렇지 않으면 별똥별이 되어 생을 마치게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다시 확산되고 있다. 살기 위한 방편으로 거리두기가 종용 되지만, 이는 본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 불가결한 거리, 사람(人)에게 필수적인 안전거리(間)로의 복귀인 것인지도 모른다. 비정상으로 치닫는 문명사회를 급제동 시키는 하늘의 응급조치 일는지도 모른다. 혼자서도 존재할 수 있는 예행연습이고 실습의 기회가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문명이 발전하고 관계망이 더 복잡해지는 세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신 가족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외부 요인과 환경에 따라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홀로된 노년층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황혼이혼이라는 예전에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빈번해졌고, 결혼 정년기에 접어들은 청년들이 결혼 못 하거나 자발적으로 하지 않은 독신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일방적 자기희생과 인내만을 강요할 수 없는 세태 속에서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무작정 질책만 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촌에 1인 가구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 무려 57%에 이르게 되었고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독일 등도 이미 40%를 넘어섰다. 일본도 35%에 이르고 한국도 미국도 30%에 다가서고 있다. 미성년자를 제외하면 성년 절반이 혼자 사는 시대가 닥칠 것이 예상된다. 점차 싱글 사회가 우리의 미래사회 모델처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최근 영국정부는 세계 최초로 정부 기구에 “외로움을 담당하는 장관직”이 신설되었다. 외로움에 처한 사람들로 인해 발생될 사회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 형편에 이르렀다는 반증이며, 영국의 앞서가는 문제의식과 선견적 안목인 것이다.

이제는 인공지능이나 인공위성에만 주목할 때가 아니다. 고독이 준비되지 않아 외로워하는 독신 가족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차제에,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서 새삼 진지하게 바라보며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독거로 살아가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혼자인 상태에 놓이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고독은 인간의 특별한 예외 사정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지금의 방역 비상사태는 관계의 짐을 한 번씩 정리하는 하늘의 시스템이요 우리를 향한 암시일 수 있다. 독신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점은 오히려 진정으로 의미 있는 관계의 중요성을 반사적으로 일깨워주는 일대 반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늘의 별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자신의 실존을 잃어가는 현대인들 이여~! 속 빈 강정 같은 관계의 늪에서는 과감히 해방되어라. 고독 속에서도 외롭지 않도록 내면의 음성을 들어보라. 그리고 응답하며 자신과 친해져라. 자유와 해탈을 터득한 인류의 스승치고 외로움의 관문을 넘어 고독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 진정 내가 누구인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채, 아니 알려고 하지도 못한 채 덧없이 그날을 맞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마음감옥에서 탈출하는 열쇠꾸러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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