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칼럼] 나는 묻는다 “세상이 왜 이래?”, 세상은 질문한다 “너는 왜 그래?”
[윤영호 칼럼] 나는 묻는다 “세상이 왜 이래?”, 세상은 질문한다 “너는 왜 그래?”
  • 윤영호
  • 승인 2020.12.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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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가수의 신곡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라는 노래가 한동안 떠들썩했다. 이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낯설다는 외침이다. 사람마다 자기중심적인 감정이 행복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런 질문이요 외침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어느 특정 시대 특정한 사람에게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리고 질문하는 사람과 답을 해줘야 하는 대상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자신이 바로 그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는 낯 설음에 직면할 때마다 질문을 통해 삶의 어젠다가 설정되었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진화되고 발전되어 왔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고, 짠 바닷물과 싱거운 육지물이 합류하는 ‘낯 설은 갈등지대’에서 다양한 종류의 생명이 풍성하게 생육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좋든 싫든, 낯 설음은 문제만 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관문인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도 어린 시절 성장과정이 있었다.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나약한 인간의 애환과, 그 당시 그 시대의 실상을 몸으로 접하며 낯 설음에 대한 질문과 하늘의 답을 구하는 과정 속에서 마침내 틀에 갇힌 인간의 한계상황을 돌파하는 반전의 삶을 구현하면서 우리에게 구원에 대한 희망과 로드맵을 제시했다.

석가모니도 성장과정에서 두려움이 있었다. 죽음이 두렵고 병드는 것이 두렵고 “세상이 왜 이래?”라는 물음 속에서 마침내 삶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괴로움의 발생 원인과 변화 메커니즘’을 세밀히 미분하고 관찰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인식 체계를 제시했다.

그러길래, 이분들의 비유 말씀이나 화두는 애매모호한 뜬구름 속, 무지개 이야기가 아니었다. 현실 속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들을 통해서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고 있다. 실존적 삶의 무대에서 “왜?”라는 질문을 통해, 사람마다 “어떻게?”라는 자기맞춤형 명답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안내했던 것이다. 문제 속에 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문제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뿐이고, 질문 없는 세상은 죽을 세상뿐’이라는 전제 속에서, 이제 우리는 질문과 함께 동시에 대답도 해야 하는 전인적 인격이 될 때가 되었다. 내 중심에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져 보았다면, 세상 중심에서 나에게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속에서 그에 대한 답을 전전긍긍하며 찾아보자.

‘세상이 왜 이래?’ 라는 화두 속에는 ‘나는 왜 이래?’라는 질문이 포함된 것이다. 세상과 나는 분리되어 있는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 우주이며, 그 우주의 조합이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은 실종되고, 편가름만 깊어져 “네 편은 무조건 틀렸고 내 편은 무조건 옳다”고 하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의 오기와 객기가 기승을 부리는 한, 세상을 원망하는 넋두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세상이 극한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의연한 선지자가 되어 중심을 잡아주던 시대의 어른 목소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들이 비겁해졌다’ ‘그들이 명분을 잃었다’ 고,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의 비겁함과 편협함과 어리석음 속에는 그러한 나의 속성과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묵시적으로 동조한 나의 태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 전체를 흔들어 대고 있어, 사람마다 마스크를 쓰고, 국가마다 봉쇄도 하며 단절을 강요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단절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이다. 이웃의 전염이 나의 위험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남의 안전이 나의 안전이요, 남의 이로움이 결국 나의 이로움(利他 卽 利己)이라는 그동안 애매하게 들렸던 소리가 진실이었음을 체득하고 있다. “너 죽고 나 살자” 가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너가 죽으면 결국 나도 죽을 수밖에 없다. 내 집만 안전하면 그만인 시대도 지났다. 세상이 무너지면 나와 내 집의 토대가 한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건강이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고 경제가 무너지면 치안도 무너진다. 돈이 없어서 코로나 백신을 구입할 수 없는 최빈국은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는 이야기는 결국, 남의 문제가 내 문제라는 이야기다.

“세상의 안전이 나의 안전이다~!”

“세상의 화평이 나의 화평이다~!”

▲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마음감옥에서 탈출하는 열쇠꾸러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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