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칼럼] '뉴 노멀'시대의 삶② 살려면 뭉쳐야 하는가 흩어져야 하는가?
[윤영호 칼럼] '뉴 노멀'시대의 삶② 살려면 뭉쳐야 하는가 흩어져야 하는가?
  • 윤영호
  • 승인 2021.02.03 2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團生㪚死(단생산사)냐 㪚生團死(산생단사)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하다. 그런 말만 들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신탁통치를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던졌던 말이고, 명량 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에게 강조한 말이다. 계몽주의 사상가 벤자민 프랭클린도 말했고(United we stand, devided we fall. Join or Die), 중국의 사상가 장자(莊子)도 “사람의 목숨은 기(氣)가 모인 것이니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명언이 어느 때나, 어느 상황에나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열쇠처럼 받들어 왔다

그런데 오늘날,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해서는 모이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 국무총리도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며 방역을 강조했다 기존의 명언이, 단생산사(團生㪚死)에서 산생단사(㪚生團死)로 뒤바뀌어져야만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물론, 그 말들의 뉘앙스가 다르고 적용되는 구체적인 의미가 차이 나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그동안의 삶에서 되새겨보아야 할 점을 찾는다.

그동안 우리 사회 어느 집단이건, “우리가 남이가?”식으로 무조건 대동단결을 외치며 힘을 모으고 과시하면서 그 세를 확장해왔다. 그런 가운데 소리 없는 부작용(Side Effect)이 작동하고 있었으니 극단적인 진영논리의 강화와, 집단 이기주의, 그리고 잘못된 패거리 문화가 요소요소에 마피아처럼 철옹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뭉쳐서 국가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여 국력을 약화시키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굳어진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패거리 이익집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선거철이 되면 쪽수가 많은 집단의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에게 압력집단으로 작용하면서 톡톡한 재미를 보며 패거리 문화를 더욱 강화했던 사례를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뭉치는 것도 선별적으로 뭉쳐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간판이 아니라 그 속의 내용이 선하고 방법이 적절할 때만 뭉쳐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해로운 것이 중심에 있을 때는 뭉칠수록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집단은 뭉칠수록 세상을 불안하게 하며, 도박집단은 많아질수록 세상이 병든다. ‘n번방’같은 사이버 음란물도 그 세가 강해질수록 인간의 정신은 폭넓게 피폐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이 해악이 작동되는 집단일수록 세상을 속이기 위해 그 간판을 근사하게 꾸민다는 것이다. 사회 취약계층을 도운다는 명분으로 돈벌이를 하고, 인성을 성화하는 종교간판을 내세우면서 자기 왕궁을 세워 나간다든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힘을 모으고 세를 불려 마침내 영향력 있는 조직에 되었을 때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되면서 비리나 범법이 바이러스처럼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집단만의 병리현상은 아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말에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고, 돈을 동원시키는 힘이 세어지면 마치 군주처럼 행세하고 싶은 유혹을 여간 강직하고 여간 신실하지 않으면 이길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말이 곧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 권력은 마치 눈사람을 만드는 것과 같아서 초창기 때는 어렵고 힘들지만 어느 정도 세가 불려지면 그 힘과 크기는 빠른 속도로 달라붙게 된다. 지금까지 이러한 사회병리 구조 속에서 재미에 취해 아방궁을 꾸리며 살아왔던 세력들에게 경천동지할 하늘의 철퇴가 내려졌으니 그것이 곧 코로나19 팬데믹이다.

하늘을 찌를 듯했던 능력과 관계가 하루아침에 단절됨에 따라, 천년만년 갈 것 같았던 영향력이 순식간에 그 힘을 잃게 되었으니 말이다. 필요와 능력보다 규모를 턱없이 늘려 놓았던 건물이나 시설은 이제 돈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기업의 흑자도산이 바로 이런 현상이다. 단기간에 반짝했지만 지속적으로 빛 날수 있는 판이 무너진 것이다.

세상을 구조적으로 급변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3가지 역사적 사건이 있었으니, 전쟁과 혁명과 오늘날 같은 세계적인 전염병이다. 유럽인구의 30%를 죽였던 페스트 전염 이후 세상은 급변했고 결국 르네상스를 불어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이를 충분히 설명해 준다.

순리에 따르지 않는 것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변칙을 능력으로 위장하던 전략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임계점과 한계선를 넘으면 통째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송충이는 솔잎에 만족해야 천명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내 삶에 적용하며, 지금까지 재미 보던 변칙에서 당장은 씁쓸하겠지만 원칙으로 되 돌아와야 한다.

내 가정의 안전은 건재한 사회 속에서만 가능하고, 건강한 사회는 지구가 버텨낼 수 있는 자연환경의 한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며 우리 후손도 살수 있도록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자고 유엔에서도 이미 과제가 합의되었고, 새로 출범한 미국의 바이든 정부도 그동안 탈퇴했던 빠리기후협약(Paris Climate Change Accord)에 다시 들어가 그 통제에 따르기로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저탄소 제로를 향한 국가전략을 선언했다. 모두가 지속 가능하지 못했던 기형적인 전략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원상 복귀하자는 각성의 목소리다. 우리들도 이제, 내 패거리만 살겠다고 악한 것에 모았던 힘일 랑은 빼 버리고, 함께 잘 살도록 하는 선한 가치에 힘을 모아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마음감옥에서 탈출하는 열쇠꾸러미’ 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