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칼럼] ’뉴 노멀'시대의 삶 ⑥어두운 일상속에도 숨겨진 보물은 있다
[윤영호 칼럼] ’뉴 노멀'시대의 삶 ⑥어두운 일상속에도 숨겨진 보물은 있다
  • 윤영호
  • 승인 2021.03.20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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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는 가까운 친구를 찾아가기도, 오라고 하기도 쉽지 않다. 멋진 무대 공연에, 누군가에게 초대받는다 할지라도 찝찝해서 그 초대에 선뜻 응하기란 역시 쉽지 않다. 이렇게 스스로 단절된 삶과 밋밋한 일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아~ 옛날이여~” 하며 무기력함 속에 아쉬워만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관심을 두지 못했던 일상 속 작은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눈을 뜨고, 낙후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선배 조상들의 지혜를 삶의 등대로 삼을 것인가?

행복은 주관적 감정이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함께 가는 길동무가 아무리 많아도, 내가 느끼는 것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주관적 세계다. 그러기에 똑같은 현실이라도 내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것이 내 행복의 실질적인 기준이 된다. 큰 깨달음은 큰 고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통찰한 자는 터널 속에서도 다이아몬드를 찾아낼 수가 있고, 지극히 작은 씨앗 속에서 열매의 형상을 볼 수 있는 농부는 평범해 보이는 밭에서 수확의 보람을 거둘 수 있다.

너무 자극적인 것을 탐닉하지 말자

강렬한 것은 일상의 세계에서는 지속될 수 없다. 일상은 원래 밋밋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밋밋하기에 일상 속 주메뉴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기름진 음식이나 강렬한 탄산음료나 너무 단 기호음식, 너무 향(香)이 짙은 특별한 음식을 매 끼니마다 계속해서 섭취해보라. 며칠만 지나면 질리게 되고 거부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갈증 날 때마다 최고의 음료는 평범하지만 역시 순수한 물이다.

중동지역에서 오래전 근무한 시절이 있었다. 그들이 매일 먹는 국민음식으로 ‘에이쉬’라는 밋밋한 빵이 있다. 화덕 벽에 붙여서 구워 내는 것으로 특별한 향도 없고 모양이 넓적한 것이 꼭 걸레처럼 생겼다 해서 일명 ‘걸레 빵’이라 부르기도 한다. 향도 없고 맛도 밋밋한 이 에이쉬(걸레빵)를 가지고 자극 있는 다른 음식을 싸서 먹기 때문에 향내 짙은 다른 음식도 일상의 밥상 위에 질리지 않고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밋밋한 것이 일상을 지켜내는 보물인 것이다. 무대화장이 멋지다 해도 잠잘 때는 지워야 편하고, 공연 복장이 화려하다 해도 평범한 일상복과 어떻게 그 편안함을 견줄 수 있겠는가?

짜릿한 것은 한 순간일 뿐이다

학문 탐구는 계속될수록 지성이 향상되지만 육체의 쾌락은 계속될수록 느낌이 줄어든다. 짜릿한 거 너무 밝히다가 패가망신하게 되는 이유는, 가면 갈수록 더욱 농도 짙은 자극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혹과 자극에 대한 ‘갈애(渴愛)의 감옥’에 갇혀 스스로 창살 없는 옥살이를 하는 것이다. 현대인이 지나치게 집착하는 짜릿함에 대한 갈망은 결코 정상이 아니라 사회적 병리 현상임이 분명하다. 만약 코로나 이전에 누렸던 짜릿함에 대한 향수로 인해, 우울함을 넘어서 삶의 의욕까지 잃는 이가 있다면 그는 환각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분명하다. 차라리 그 비정상적인 짜릿한 경험이 없었던 것만 못하다. 평범한 일상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이 이미 마비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밋밋한 오늘의 일상도 과거 기준으로 보면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소망이었다.

대중 인기가요 ‘보릿고개’라는 노래의,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 라, 가슴 시린 보릿고갯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라는 가사는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70여년 전 우리나라 현실 이야기다. 춘궁기에 식량이 부족해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고 물로써 배를 채워야 했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배고픈 일상이었다. 그 시절에는 굶지 않고 사는 것이 일반 서민들의 꿈이요 소망이었다. 그런데 지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밥 굶는 사람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따뜻한 샤워물도 그 당시에는 결코 일상이 될 수 없었던 기적이다. 이제 그 꿈같은 기적이 우리의 현실이 되었지만 그 편리함이 그저 당연한 일상처럼 평범하게 느끼며 살고 있을 뿐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특별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새로운 특별함 만을 탐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허락된 여기에서 보람을 찾아라

미래의 행복은 보장된 것도 아니며, 현실로 실현된다 해도 짧은 기간 동안 짜릿한 행복감을 맛본 후에는 그저 밋밋한 일상이 되고 만다. 그러나 반대로, 누려왔던 일상의 환경이 사라지면 문제는 심각 해진다. 지금 손에 있던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고 할 때,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핸드폰 속에 들어있는 일상의 자료들 때문이다. 일상의 갑작스런 단절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가처분 소득이 갑자기 반으로 줄어든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씀씀이를 곧바로 반으로 줄일 수는 없다.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듀젠벨리의 톱니효과’라고 부른다. 이는 마치 소비가 습관이라는 톱니 장치에 맞물려 있는것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 진행되는 과정 중에서, 지금 여기에 주어진 여건 속에서, 보람의 기회를 발견하는 사람만이 행복의 주인공이다. 지속 가능한 일상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밋밋한 조건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보물을 발견한 인류 선배의 지혜를 배우자

시대의 영웅은 난세 속에서 태어나는 법이다. 무료할 정도로 단절된 시간을 오히려 절호의 기회로 선용하여, 고전도 읽고, 선각자들의 지혜도 마주쳐 보자. 난세 같은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진국 같은 의미를 발견해보자. 특별해 보이지 않는 것에서 특별한 의미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면, 불안한 공황장애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오늘의 위기를 나만의 맞춤형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보다 진지할 수 있고, 보다 근원적인 삶에 다가갈 수 있기에, 오히려 호기를 잡을 수도 있다.

유럽인구의 30%이상을 죽였던 페스트(흑사병)는, 오늘 코로나 전염병 같은 세계적 팬데믹의 원조격이다. 그 당시, 페스트가 크게 유행하자 대학이 일시 폐쇄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아이작 뉴턴이 지금처럼 격리된 생활을 해야 하는 답답한 그 기간에, 연구에 더 집중해서 써낸 대표적인 논문이 “미분과 적분”이었고, 그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바로 그때(1665~1666)였다고 하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악조건 속에서 배워야 할 선배들의 지혜요 로드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마음감옥에서 탈출하는 열쇠꾸러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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