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령의 구혼', 1848년, 파벨 페도토프(1815-1852), 캔버스에 유채, 58.3х75.4см,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소령의 구혼', 1848년, 파벨 페도토프(1815-1852), 캔버스에 유채, 58.3х75.4см,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마치 마법의 지팡이가 그림 속 순간을 정지시켜 버린 듯하다

무슨 일 일까?

<옅은 분홍빛 드레스 여인>은 아름답다.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을 거다.

제일 예쁜 옷을 골라 입고 정성스레 머리를 빗고 '내 님은 누구일까, 어찌 생겼을까?

처음 보는 내게 어떤 눈빛을 아니 어떤 첫마디를 건넬까?' 두 볼을 붉게 물들이며 그분을 기다렸을 거다. 낭만 소설에서 읽어 얻은 아이디어로 미래의 그분 앞에 살짝 떨어뜨릴 손수건을 준비하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떨어뜨린 손수건을 집어 들며 첫마디를 건네 올 그분과의 낭만을 기대하며 가슴 떨려 했을 그녀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는 건가! 심쿵을 기대했던 그분과의 만남에서 그녀는 '이건 아니야' 를 외치며 몸을 돌린다. 낭만의 징표인 손수건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그래, 그녀의 그분이 될 남자는 딱 봐도 풋풋한 아가씨와는 어울리는 나이가 아닌 듯하다. 세상 물정 알만큼 다 알고 설렘, 순수 이런 것들은 아주 예전에 묻어 버린 나이 먹을 대로 먹어버린, 고작 소령이라는 사회적 지위 하나만 부여잡고 상인의 집에 지참금 두둑이 뜯어내 앞으로의 일신을 편안히 돌보려는 속물이다. 문 앞에서 '혹시 나 홀대하는 거요? 감히 내게?'라는 표정으로 거들먹거리는 소령의 모습이 참으로 느끼하다.

번들거리는 비단옷에 거대한 몸을 맡긴 드레스 여인의 엄마는 휙 돌아서는 딸의 철딱서니가 못마땅하다. 결혼은 남녀에게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는 일. 이 불변의 절대적 진리를 두고 철없이 구는 딸아이를 세게 잡아당긴다. '우리가 가진 돈만 있으면 세상 편히 살 줄 아니? 돈을 뿌리면 반짝거리게 해줄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일렀거늘. 쯧쯧…...' 이런 잔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결국은 가장 힘 세 보이는 엄마는 의지대로 소령에게서 권력을 사 딸에게 안겨 줄 거다.

이 거래로 중매 비용을 두둑이 챙겨야 하는 중매쟁이는 아가씨의 돌발행동에 몹시도 불편하다. 혹시라도 이 결혼이 깨질까 노심초사한다. 거래의 성사에 전혀 힘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아버지라도 다그쳐 본다. 검은 옷의 사내는 중매쟁이를 묵묵히 받아낼 뿐이다.

“난 이 집에서 힘이 없다우.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도 아내가 가져온 지참금 때문이라오.

난 무능력한 상인. 아내는 그게 철전지 한이 된 사람이라오”라고 소심하게 중얼대는 듯하다.

수십 년 알코올에 절어 붉어진 아빠의 콧잔등이 현실에 흥분하는 항변으로 착각되는 씁쓸한 현실이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인간다운 눈빛으로 딱 한 사람만이 드레스 여인을 쳐다본다. 손님 접대 상차림에 분주한 앞치마 두른 여인은 어릴 적부터 그녀를 키운 유모인가 보다. 딸 같은 그녀가 사랑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현실에 희생되는 지금이 못마땅하다. 하지만 유모는 힘이 없다. 체념하고 지켜볼 뿐이다.

결혼이 거래이던 19세기 러시아. 찰나의 이 그림이 과연 과거 러시아에서만의 일일까?

세상사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 한 자락을 따끔히 꼬집어내는 페도토프의 천재성이 참으로 대단하다.

파벨 페도토프(1815 ~ 1852)

러시아의 화가다. 모스크바에서 출생하였고 군대 생활을 주제로 많이 그렸으나 점점 사회적인 테마를 주로 그렸다. <소령의 결혼> (1843), <귀족의 조반>(1849~1851), <미망인>이 유명하다

 

▲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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