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를 조여온다. 무릎과 무릎이 닿았다. 점점 조여오는 강한 힘. 단단한 근육이 허벅지에 닿았다. 그냥 닿아 있는 게 아니다. 힘이 느껴진다. 육중한 몸집의 사내는 허벅지가 맞닿으면 더 밀어붙인다. 피할대로 피했지만 역부족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그만 좀 해요. 어쩌라고요. 꽉 다문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이제 두 다리조차 딱 붙었다. 그래도 다리를 포개지 않고 버틴다. 상반신까지 긴장한다. 몸이 오그라들고 숨이 불규칙하다. 손에 땀이 흥건하다.

옴짝달싹하지 못할 정도다. 탈출하고 싶다. 근육이 소리친다. 남의 근육 좋아하지 않아요. 버티기에 들어간 두 허벅지는 서로 의지하며 해방을 기다린다. 배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꽉 조여요. 카랑카랑한 요가 강사의 목소리가 맴돈다.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엉덩이 근육을 움직였다. 심호흡을 했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요. 하나 둘...그리고 아랫배를 조이면서 입으로 깊숙이 내뱉어요. 요가 강사의 말대로 긴장을 풀어본다.

여신에게 기도하자. 버텨야 하니까. Craig Pruess의 ‘Devi Prayer’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인도의 평온한 사원에 앉아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딱이다. 은은한 선율 여행도 잠시. 또다시 조여온다.

사내는 다리를 점점 더 벌린다. 그놈의 근육이 불쾌하다. 이 사내는 웰터급도 아니고 많은 평수를 차지하는 헤비급이다. 헤비급치고는 단단해 보인다. 오른쪽 사내는 아주 평범한 체격이다. 영토에 대한 욕심일까. 근육질을 자랑하고 싶은 걸까. 밀착 또 밀착. 다리를 바싹 조인 채 몸을 웅크렸다. 벗어나고 싶다. 그럴 수도 없다. 하필 오늘 이 사내들일까.

운이 나빴다. 어제 점심 메뉴는 신선했다. 늘 먹던 구내식당과는 달랐다. 계산을 마치고 음식점 유리 문을 밀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튀어나온 단말마. 헛디뎠다. 하마터면 고꾸라질뻔했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계단인 걸 몰랐다. 발목을 접질렸다. 약간 욱신거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회사에 도착해 스프레이 파스를 뿌렸다. 괜찮은 듯했다. 퉁퉁 부은 건 퇴근 즈음 알았다. 붕대를 감았다. 바지 밑단에 가려 감쪽같았다. 걸음걸이는 약간 부자연스러웠다.

엉덩이를 들이민 게 화근이었다. 약간 좁은 듯했지만 공간을 발견했다. 기회는 찬스. 본능이 앞섰다. 엉덩이를 밀어 넣는 것과 동시에 건장한 사내들의 실루엣이 스쳤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상체를 약간씩 움직이며 몸을 밀어 넣었다. 숨이 막힐듯하다. 마치 몸에 맞지 않은 꼭 끼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처음부터 좁아 보이긴 했다. 게다가 허벅지를 노리는 건장한 사내들. 머릿속에 온갖 욕설의 키워드가 새끼를 쳤다. 이 사내들이 떠나기만을 기도했다. 떠날 수 없는 비애. 붕대 감은 발목이 떠올랐다.

발목만 온전하면 벗어날 수 있을 덴데. 한숨이 나온다. ‘좌 헤비급, 우 웰터급’에 낀 부상녀의 설움이다. 사실 전에도 이런 사내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때는 참다못해 뛰쳐나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처음에는 버텼다. 아랫배와 허벅지에 힘을 주고 자세를 유지했다. 요가 포즈다. 허벅지를 탐하는 사내들. 내가 완강할수록 사내는 더 강한 힘으로 밀었다. 온몸의 에너지를 동원했다. 나도 사내의 허벅지 쪽으로 힘을 줬다. 사내는 근육에 힘을 줬다 뺏다를 반복했다. 정치인들의 기싸움도 아니고. 결국 힘의 균형은 깨졌다. 애초부터 제로섬게임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짧은 기싸움 끝에 사내의 두 다리는 직각에 가까운 영토를 확보했다. 이제 둔각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어쩌다 쳐다본 좌우 사내. 휴대폰 놀이에 빠져있다.

불쾌지수와 짜증지수가 상한가다. 벌떡 일어났다. 순간 발목에 통증이 왔다. 허벅지는 해방됐다. 어쩌다 또 쳐다본 양쪽 사내들. 아무렇지 않은 표정. 아랑곳 않은 침묵. 눈에서 초강력 레이저가 쏟아졌다. 사내들 뒤쪽 지하철 유리창에 주홍 글씨가 새겨졌다. “‘쩍벌남’ 다리 밴드 미착용시 벌금부과”....“C사감, 쩍벌남 탑승거부법안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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