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나의 첫 번째 친구와 함께. 그녀가 먼저 손하트 포즈를 취했다.
길 위에서 만난 나의 첫 번째 친구 디이지와 함께. 그녀가 먼저 손하트 포즈를 취했다.(왼쪽 사진) 방콕 왕궁에서 디이지가 한컷.

"호주행 비행기 티켓 주세요."

"호주 비자 있으세요?"

"저 호주 비자 필요 없는데요?"

"호주 비자 있어야 합니다."

"네? 저 호주 가봤는데요? 티켓 주세요."

"비자 없어서 못 드립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비자를 받으셔야죠. 그런데 이제 체크인 마감했네요."

"..... 그럼 환불..."

"No."

홍콩에서 호주를 가려고 했다. 호주에는 친동생이 살고 있고, 3번째 방문이다. 당시에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번도 내 손으로 호주 비자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아 본 결과, 한국에서 호주 가는 비행기 표를 끊으면 항공사나 여행사에서 자동비자 시스템이 연계가 되는 경우도 있으나 확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자동 비자가 발급되었던 거다.

비자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3일 만에 국제 미아가 되었다. 일단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동생한테 못 간다고 연락을 하고, 고민에 빠졌다.

세계 여행을 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항공권 사이트를 들어가 홍콩에서 "어디로 떠날지 모르시겠습니까?"라고 설정을 하고 저가 순으로 검색했다. 맙소사. 정말 하늘의 계시인 것인가. 가장 저렴한 곳은 인천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검색 끝에 홍콩에서 가깝고, 비행깃값이 저렴하며, 비행 출발 시간이 빠르고, 무엇보다 중요한 비자가 필요 없는 태국 방콕으로 향했다.

계획 없던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배낭 여행자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카오산로드.
계획 없던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배낭 여행자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카오산로드.

숙소도 계획도 없던 나는 방콕 공항에 도착해서야 숙소를 잡았고,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오늘 뭐 하지?'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김없이 '오늘 뭐 하지?'로 하루를 시작 한 어느 날, 방콕 왕궁에서 내가 호주행 비행기를 놓친 이유를 알게 해 준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세계 여행 중에 만난 첫 번째 친구 디이지(인도네시아, 27). 혼자 여행 중인 나에게 혼자 여행 중인 그녀가 사진을 부탁했고, 나의 사진도 찍어 주면서 제안했다.

"서로 사진 찍어주면서 같이 다니지 않을래?"

"디이지, 그때 왜 나한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어?"

"딱 봐도 한국 사람이잖아!!"

"평소에 한국에 관심이 많았어?"

"당연하지! 나는 내년에 꼭 한국으로 여행 갈 거야. 한국에서 정말 다양한 곳들을 가보고 싶어. 특히 경복궁!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싶거든. 그리고 한국 드라마에서 본 음식들을 정말 먹어보고 싶어!!! 언니와 함께 하고 싶다."

"당연하지! 뭐 먹고 싶은데? 말만 해! 한국인들도 드라마 보면서 그날의 야식 메뉴가 정해진다고!"

"삼겹살, 짜장면, 짬뽕, 칼국수, 보쌈, 곱창, 그리고 길거리 음식도 다 먹어보고 싶은데 특히 어묵꼬치랑 닭꼬치, 마지막으로 집 밥! 드라마 보면 가족들 둘러앉아서 밥 먹을때 반찬이 엄청 많잖아! 꼭 먹어보고 싶어!"

"이게 다 드라마를 보고 먹고 싶어진 음식이라고? 도대체 한국 드라마가 너에게 어떤 영향을 준 거니?"

"응! 정말 대단하지. 한국 드라마는 스토리가 진짜 최고야! 나는 드라마 때문에 한국이 유명해졌다고 생각하고, 한국 드라마는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 싶게 만든다고 생각해. 나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의 문화를 배웠고, 한국 음식이 먹어보고 싶어졌고, 한국을 꼭 가보고 싶어졌거든. 지금 난 가보지도 않은 한국을 정말 사랑하고 있고,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어. 물론 지금은 몇 개의 단어 정도만 말할 수 있지만."

아유타야 보리수나무 속 불상이 유명한데, 미얀마 침략을 당했을 당시 잘린 불상의 머리에 오랜 시간에 걸쳐 나무가 자라면서 만들어진 형태라고 한다.​
아유타야 보리수나무 속 불상이 유명한데, 미얀마 침략을 당했을 당시 잘린 불상의 머리에 오랜 시간에 걸쳐 나무가 자라면서 만들어진 형태라고 한다.​
방콕 아유타야에 가면 다양한 불상을 만날 수 있다.
방콕 아유타야에 가면 다양한 불상을 만날 수 있다.

"네가 이렇게 한국을 사랑하게 만든 너의 인생 드라마는 뭔데?"

"선덕여왕! 내가 대하드라마를 좋아해."

"와.. 도대체 몇 살 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본 거야."

"내가 언니보다 한국 드라마 더 많이 봤을지도 몰라."

"진짜 그럴 거 같아. 드라마에서 배운 한국말 있어?"

"안녕하세요. 좋아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애교..."

"아니야. 그건 괜찮아. 하하. 나도 널 만나서 정말 반가워. 우리 각자 여행 중에 만났잖아. 너에게 여행이란?"

"여행은 꿈같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들을 겪게 되지. 물론 그냥 그곳을 방문만 했다고 꿈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 새로운 곳에 가면 그들의 문화와 언어, 전통 음식을 배우려 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려고 노력해야 여행으로부터 진짜 꿈같은 시간을 갖게 될 거야."

"마치 우리가 방콕에서 서로를 만나 꿈같은 추억을 만든 것처럼 말이네? 나를 만난 태국은 어땠어?"

"태국은 인도네시아의 오랜 친구라서 친구 집에 놀러 간 거 같았어. 우린 얼굴도 비슷하잖아? 그리고 음식도 비슷해서 좋아."

"앞으로 가보고 싶은 나라 있어?"

"유럽! 나는 정말 유럽에 가보고 싶어. 유럽의 아름다운 건축 양식과 문화를 사랑해."

"한국을 사랑한다며?"

"한국은 곧 갈 거잖아. 이건 가보고 싶은 나라라고!"

"꼭 한국에 와서 우리 집에서 집 밥 먹고 같이 드라마 보자!"

"주나 언니 사랑해."

이렇게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인인 걸 알아보고 나에게 사진을 부탁한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방콕에 왔구나. 그 이유 하나면 충분했다. 국제 미아에게 국제 친구가 되어 준 고마운 디이지.

디이지 덕분에 나는 여행지에서 친구 사귀는 법을 알게 되었고, 함께 해줘서 고맙다며 그녀가 사 준 수박주스 덕분에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200밧(한화 약 2,000원)짜리 수박쥬스가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너는 알고 있을까?

그 후로 우리가 어떤 사이가 되었냐면... 그날의 짧은 만남이 아쉬워서 나는 두 달 후 오로지 디이지를 만나기 위해 인도네시아 발리로 떠났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디이지 집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였고, 디이지는 나를 만나기 위해 휴가를 내서 비행기를 타고 발리로 왔다는 사실이다.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는데 한가지 변명을 하자면 분명히 디이지가 발리 사진을 보여주면서 인도네시아에 놀러 오라고 했었다.

중요한 건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는 것이고, 디이지의 한국 여행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세 번째 만남을 갖게 될 거란 것이다.

누군가는 나와 디이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운명은 수많은 나의 선택 속에 만들어진 것이다. 호주 비자를 알아보지 않은 것, 홍콩에서 방콕으로 여행지를 선택한 것, 방콕에서 그날 그 시간에 왕궁을 방문한 것, 그 위치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두리번거린 것까지. 운명은 결국 내가 선택했던 일들의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세계 여행을 선택한 나의 운명이 기대가 된다.

카오산로드, 수상시장, 왓 와룬, 방콕 기차역. 호주에 동생을 만나러 가려고 했기에 동생에게 줄 선물을 캐리어에 한가득 챙겼었다. 하지만 호주 비자가 없는 나는 캐리어를 끄는 배낭여행자가 되었다.
카오산로드, 수상시장, 왓 와룬, 방콕 기차역. 호주에 동생을 만나러 가려고 했기에 동생에게 줄 선물을 캐리어에 한가득 챙겼었다. 하지만 호주 비자가 없는 나는 캐리어를 끄는 배낭여행자가 되었다.

▲김준아

- 연극배우

- 이연컴퍼니 제작PD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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