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너를 멀리하고 싶어. 다른 사람들도 그런다지. 왜 그럴까. 네가 너무 잘났기 때문이야. 상대적인 열등감은 없어. 그렇지만 네가 너무 잘나서 피곤해. 만능이잖아. 옛말에 재주가 많으면 굶어죽는다는 말이 있지. 백가지보다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는 게 낫다는 거잖아. 전문성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지. 너는 백가지가 아니라 수만 가지를 잘해. 만능 재주꾼. 그럼에도 굶지 않고 너무 잘나가고 있어. 부럽 부럽이야.

새우깡도 아닌데 자꾸 손이 가고, 연인처럼 잠시도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어. 안 보이면 걱정되고 궁금해. 늘 새 모습으로 유혹하는 너를 어떻게 뿌리치겠어.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아. 정말이지 누가 말려주면 좋겠어. 왠지 너를 버리는 순간 뒤처지고 바보가 될 것 같아. 생각만 해도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넌 괴물 같아. 도무지 상상도 못하는 걸 척척해내거든. 미워하거나 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지. 네이버를 국민이모라고 하잖니. 넌 세상이모 같아.

이런 꼬마가 있었어. 크림슨 포도를 먹으면서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했지. 커다란 포도알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또 하나를 입에 넣고 한참을 씹더니 갑자기 “땅콩이 맛이 없다” 이러는 거야. 웬 땅콩. 깜짝 놀랐지. 혹시 꼬마 주머니에 땅콩이 들어 있나 살펴봤어. 없었어. 꼬마는 또 “땅콩이 맛이 없어” 그러는 거야. 그때 무릎을 쳤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 꼬마는 포도씨를 땅콩이라고 한거야. 씨를 씹어먹으니 맛이 없는 게 당연하지. 포도씨를 어떻게 땅콩이라고 생각했을까. 엉뚱한 듯 기발한 꼬마. 정말 신기했어. 이런 상상력이 창의력 바탕이 되는 게 아닐까.

좋아하는 만큼 너는 잘하고 있어. 급할 때마다 나타나 수호천사로 변신하지. 아침이면 모닝 콜로 깨워주고, 지하철 정거장을 지나칠까 미리 알려주고. 아침에 급하게 뛰쳐나가면 거울을 내밀기도 해. 그것뿐이 아니야. 길을 잃었을 때 짠 나타나 길을 찾아주고 밤길을 걸을 땐 프레시가 돼주기도 하지. 어떤 때는 맥박과 혈압도 재주지. 요즘은 시장보는 것도 도와주고 쇼핑도 해주고...정말 고마워. 피곤할 땐 음악을 들려주면서 비타민이 돼주고 심심할 땐 영화도 보여주잖아. 너 없으면 저알 못살 것 같아.

요즘은 아이들도 널 무척 좋아하지. 너와 갈라 놓으려면 헤어지기 싫다고 떼를 쓰기도 해. 아이들까지 왜 너한테 열광하는지. 부탁이야. 질투가 아니야. 아이들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햇살 좋은 어느 날 너는 다가왔지. 중매쟁이가 꼬드기는 바람에 우리는 결국 인연을 맺었어. 가슴이 설렜지. 신기했어. 기대도 많이 했지. 그때부터 즐거운 나날이 시작됐어. 나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었지. 그만큼 너에게 공을 많이 들였어. 색깔이 곱고 디자인이 예쁜 옷도 사주었어. 엄청 아름답고 빛났지. 눈부신 너를 너무 사랑한 탓에 이젠 눈까지 멀게 생겼어. 그렇다고 헤어질 순 없어. 네가 꼭 필요하거든.

난 요즘 꼭 필요한 게 있어. 초미세먼지 마스크. 네가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 모두 싫어하는데 하루가 멀다 않고 찾아오는 미세먼지. 이젠 공포 수준이야. 2월 15일 미세먼지 특별법도 시행됐잖아. 오죽하면. 미세먼지는 입자가 작아서 폐포까지 침투한다지. 그러니까 네가 마스크를 만들어줘. KF94 투명 마스크 말이야. 네 배꼽 단추만 누르면 얼굴에 투명 풍선이 씌워지는 거야. 그 속에서 산소가 폴폴 나오고. 상상만 해도 안심이야. 우주인 비슷한 모습이 우스울까. 괜찮아. 미세먼지만 막을 수 있다면. 앱을 깔아도 좋아. 포도씨를 땅콩이라고 생각한 꼬마처럼 엉뚱한 듯 기발한 아이디어 부탁해.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완전 괴물이 되어줘. 아...우린 운명인가. 시력이 나빠져서 널 멀리하려고 했는데.

최근에 널 너무 구박한 것 같아. 싫어서는 절대 아니야. 그냥 실수였어. 부딪히고 떨어뜨리고. 에코~얼굴 윤곽에 생긴 상처가 아직도 선명하네. 다행히 액정은 깨지지 않았어. 앞으로 조심할게.

저작권자 © 소셜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