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은의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이야기] ⑨바실리 베레시차긴의 전쟁 이야기
[김희은의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이야기] ⑨바실리 베레시차긴의 전쟁 이야기
  • 김희은
  • 승인 2019.03.04 2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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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예찬’ 1872년, 바실리 베레시차긴 (1842-1904), 캔버스에 유채, 127х197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나는 화가로서 전력을 다하여 전쟁을 비난한다.

나의 비난이 효과적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림을 통해 직접적으로 주저 없이 전쟁의 모순을 고발하겠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궁핍과 죽음을 가져다 주는 침략 전쟁에 대해 화가 베레시차긴은 이렇게 얘기한다

타버린 들판에 높이 쌓아 올려진 두개골 산은 침략자들의 승리를 상징한다. 도대체 전쟁에서 승리는 무엇일까? 이기는 순간 내질러지는 환호성, 승리로 인해 얻어진 전리품, 산처럼 쌓여진 적군의 해골더미를 보며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 그것이 승리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과연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오고 있다. 앉아서 지시하는 명령자들에겐 전쟁이 하나의 게임일 수 있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병사들에겐 엄청난 공포이며 고통일 것이다. 또 총알받이가 되어야 하는 민초들에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이다.

전쟁은 지옥이다. 육신을 잃어버리고 승리의 전유물로 전락한 해골만이 일상의 햇빛 잔치를 즐길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까마귀에게 먹이감이 되어주는 백골 만이 허무하게 산을 이루는 것, 그것이 바로 전쟁이란 잔혹한 참상이며, 죽음과 종말이다. 그림에서 해골더미 위에 찬란히 뿌려지는 햇살은 밝고 환하다 못해 시리도록 푸르러 서글프다. <전쟁예찬>을 보며 느껴지는 가슴 서늘함 만으로도 전쟁이란 무거운 주제 앞에 답이 될 수 있을까?

베레시차긴은 1842년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해군 학교를 다녔으며, 평생을 전쟁터를 돌며 전쟁의 모순을 화폭에 담는다. 1905년 러일전쟁 뤼순항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전쟁 역사화를 남기며 차갑고 날카롭게 전쟁이 주는 참상을 고발한다.

<전쟁예찬>이란 그림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정복자에게' 라는 헌사가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지 백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선 크고 작은 전쟁들로 모두가 신음하고 있다.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전쟁놀이를 즐기는 수많은 지도자에게 베레시차긴의 <전쟁예찬>이 촌철 살인의 충고가 되면 좋겠다. 전쟁은 위대한 서사시나 영웅, 절대적 승리를 낳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한숨, 고통 그리고 또 다른 살인을 만들어 낸다.이런 전쟁이 계속된다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고 자만이며 어리석음이다.

‘승리 그리고 추도’, 1878년, 바실리 베레시차긴(1842-1904), 캔버스에 유채, 147х299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전쟁, 그 후엔 허무한 주검의 들판

승리라는 결과를 낳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희생한 저 주검들. 그들에겐 저승 갈 때 입고 갈 옷 한 벌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은 사제가 뿌려주는 하얀 연기뿐.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빠이며, 남편인 그들은 싸늘하게 누워있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전쟁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 절망을 낳을 뿐이다.

‘시프카에서는 모두 평온하다’, 1877-1879년, 바실리 베레시차긴(1842-1904), 캔버스에 유채, 147х299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수많은 동료들의 주검을 밟고 얻은 승리의 환호성. 과연 그들에게 승리란 무엇일까?

진정한 조국애와 군인으로서의 사명감도 잠시뿐 그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기쁨의 몸짓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 났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무엇일 거다. 수많은 동료의 목숨을 딛고 얻어낸 승리.

차가운 눈 바닥 위에 쓰러진 주검들을 보면서 전쟁이 주는 대가에는 어떠한 긍정도 없음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이세상에 없다

바실리 베레시차긴 (1842-1904) 러시아 역사화가이며 이동파 화가다. 투르케스탄 전쟁 (1867-1868). 러터전쟁 (1877-1878) 보도 화가로 종군하면서 그림을 통해 전쟁의 모순을 고발했다. 1904년 러일전쟁 때 뤼순항에서 사망한다. <투르케스탄 전쟁>, <시프카에서는 모두 평온하다>, <전리품을 보이다>, <승리> 등이 대표작이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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