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런데 비교적 경험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거나 그런 사업은 불가능하다는 등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태도를 더 많이 보인다. 아직 그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현실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레 짐작을 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나 태도는 두뇌 스위치를 꺼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의 두뇌는 스위치를 사용하듯 켜두거나 끌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자주 두뇌의 스위치를 끄면 생각이 서서히 멈춰버리고 현실의 울타리 속에 갇히게 된다. 아무도 이렇게 현실에 갇힌 스위치를 대신 켜 줄 없다는 것은 커다란 비극이다. 또한 자신의 두뇌 스위치가 자주 꺼지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보편적인 인간으로서는 자기 분야의 사업이 미래에 어떻게 달라질 지 전망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기업이나 사회의 지위가 높을수록 미래 전망이 더욱 불투명하게 본다. 그 이유는 현재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아는 것이 병이다. 전통 미디어 산업이 이렇게 해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 신문과 잡지는 소리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고 텔레비전도 내리막을 향해 브레이크도 없이 달리고 있다. 변화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결코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완강하고 교만한 태도로 인한 유연성이 떨어져서 그렇다. 게다가 두뇌 스위치 마저 끄면 새로운 변화는 물건너 간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고수하며 살다가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면 우물안 개구리가 되고 만다.

디지털이 만능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디지털도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그런데 순기능 조차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현재에서 미래로 건너가는 다리를 스스로 끊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만다. 디지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번 걸러서라도 필요한 부분을 선택하고 내 것으로 만들자는 말이다. 세상은 생물처럼 시시각각 변한다. 아무리 부정해도 세상은 언제나 자신에게 뭔가 선택을 요구한다. 두뇌 스위치만 끄지 않아도 변화의 시그널이 올 때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마치 조금이라도 배터리가 남아 있으면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지만 전원이 완전히 나가면 아무런 방법이 없는 이치이다. 비록 두뇌 스위치를 스스로 달아 놓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의지로 차단하고 끄지는 말아야 한다.

여러분의 두뇌 스위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자주 두뇌 스위치는 껐다 켰다 하는 바람에 스위치가 낡아빠져 너덜너덜하지는 않는가? 언제나 미래를 향해 두뇌가 활짝 열려 있는가? 필자가 칼럼을 통해 여러번 강조했지만 인간의 두뇌는 사용하기 따라 달라진다. 특히 뇌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 중년의 두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암기력 위주의 두뇌가 젊은 시절 활발하게 움직였다면 중년 이후에는 지혜의 두뇌가 서서히 열리며 우리 삶을 더욱 알차게 이끈다. 수없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두뇌 세포의 순환 사이클을 통해 새롭게 각광받는 중년의 두뇌가 더욱 빛이 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두뇌 스위치를 항상 켜두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두뇌 스위치를 끄지 마라.

▲정은상

창직학교 맥아더스쿨 교장

http://macarthurschool.kr

저작권자 © 소셜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