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이제 어머니는 타인에게 자신의 얼굴 근육을 작동시켜 표정이라는 걸 만들어 보이는 일마저도 귀찮아진 모양이었다.

“어머니! 저 왔어요. 반갑지요? 저 누구예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누구라도 찾아와 이 비슷한 대사를 읊어댔겠지만 나라고 별달리 뾰족한 인사말이 있을 리 없었다. 큰 소리로 아는 척을 해봤건만 아무런 미동조차 없다. 그녀의 얼굴은 석고상처럼 뻣뻣했다. 아흔의 나이가 고스란히 내려앉은 주름진 이마의 아래쪽으로 힘없는 눈동자가 단추처럼 무미건조하게 열려 있다. 분명 그 검은 구멍을 통해 바깥 세계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건만 그마저도 의심스러울 만큼 무표정 무반응이다.

10년째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의 세월 속에서 조금씩 체념으로 굳어갔을 희로애락은 이제 좀처럼 피부 근육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격렬한 자기감정을 무기삼아 남에게 수시로 상처를 입히던 날카로운 여인은 지금쯤 저 노구 어디론가 깊숙이 숨어버렸을까? 사람의 표정이나 말씨도 그렇게 생각해보니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정치적 본능이었나 보다.

이별은 창졸지간에 벌어져야 붉고 뜨겁다. 이렇게 이승과 저승 사이를 헤매면서 헤어지는 시간이 십 년쯤으로 늘어난 관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별은 말라버린 눈물자국처럼 무안하면서도 미지근하다. 새삼스레 소통할 것도 없고 절망마저 하얗게 재가 되어버린 시간 위에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어머니와의 조우는 언제나 이렇게 민망하면서도 위태롭다.

며느리인 나는 마지막 생기를 끌어 모아 그 앞에서 재롱을 떨고 바라보는 어머니는 아무 표정도 없이 눈동자만 움직였다. 늘 그렇듯 삶의 활력과 죽음의 정적이 아슬아슬하게 맞부딪히는 원맨쇼. 30분쯤 하고 진땀을 닦으며 돌아서 나오려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어머니의 외마디가 다급하게 울렸다.

“가지 마!”

몇 년 전 그렇게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그 말이 생각나는 봄밤이다. 어리광 한번 안 부리고 씩씩하게 살아왔던 친정 엄마는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다를 줄 알았는데 요즘 들어 그 ‘가지 마’ 소리를 자주 한다. 그 사이 엄마 노릇 하느라고 얼마나 속으로 꾹꾹 참아왔던 말이었을까. 그걸 듣는 마음이 쓰리고 또 아프다. 겨우 이제 와서야.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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