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알렉세예브나 황녀' 1879년, 일리야 레핀   캔버스에 유채, 204,5 x 147,7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감금된 지 1년 된 황녀 소피아 알렉세예브나-1698년 피터대제가 그녀의 친위병을 처형하고 추종자들을 고문하고 있을 때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황녀' 1879년, 일리야 레핀 캔버스에 유채, 204,5 x 147,7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감금된 지 1년 된 황녀 소피아 알렉세예브나-1698년 피터대제가 그녀의 친위병을 처형하고 추종자들을 고문하고 있을 때'

인간의 욕망은 권력의 최정점을 꿈꾼다

많은 부분을 희생하면서까지 높은 곳에 있는 권력을 손에 넣으려 안간힘을 쓴다.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이들에게 이쯤에서 그만두고 주변을 돌아보라 충고해도, 인간의 욕망은 그칠 줄 모른다. 결국엔 천륜도, 인륜도 저버리고 끝도 모를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이 권력의 노예가 된 자들이 갖는 속성이다. 부모와 반목하고 형제끼리 칼을 겨누며 부부가 서로 죽이는 권력, 우린 그렇게 권력의 시녀가 되어 비참한 말로를 걷는 수많은 위정자들을 보아 왔다.

러시아라고 예외일까?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독살하며, 동생이 누이를 살해하는 그런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들로 러시아 황실 역사는 점철돼 있다. 그렇게 서로 죽이고 죽는 암투 속에서 일생을 메마르게 살아가다 명을 다하지 못하고 쓸쓸히 사라지는 것이 러시아 권력자들의 삶이었다.

그런 황실의 역사적 사건들을 러시아 화가들은 솔직히 그려낸다. 권력이 주는 화려함도 표현하지만 힘을 잃었을 때의 초라함도 보여주고 최고 정점의 그들을 칭송하기도 하지만 추락했을 때의 허무함 또한 서슴지 않고 그린다.

그렇게 표현된 헛되고 헛된 권력의 화무 십일홍을 러시아 그림을 통해 살펴보자.

피터대제, 이복누이를 처단하다

미간을 찌푸리고 꽉 다문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을 억누르며, 분노를 참고 견디고 있는, 긴장. 초조. 불안의 저 여인은 누구일까? 바로 피터 대제와의 권력 싸움에서 참패하고 노보데비치 사원에 위폐 된 황녀 소피아 알렉세예브나다.

숨을 참으며 화를 견디고 있는 여인의 고충이 화폭을 통해 묻어나고 있다. 그녀의 머리카락 가닥가닥도 분노로 이글대는 느낌이다. 하지만 날아가는 비누방울 터지듯 허무한 분노일 뿐,

피도 눈물도 없는 왕권 쟁탈전에서 참패한 황녀는 죽을 때까지 수도원 밖을 나가지 못하는 비운의 공주가 된다. 권력이 가지는 속성에서 연민은 없다. 처참하고 잔인하게 상대를 제압하지 않으면 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권력 투쟁의 섭리다.

소피아는 대제의 이복 누나다. 소피아 공주는 그녀의 친동생 이반 5세와 이복동생 피터 1세가 공동 차르가 된 1682년, 아직 어린 그들을 대신해 7년간 섭정을 한다. 그렇게 권력의 맛을 본 소피아는 훗날 짜르의 자리를 놓고 피터 대제와 왕위 쟁탈전을 벌인다. 싸움에서 지게 된 소피아 공주는 노보데비치 사원에 갇히고 1704년 47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15년 동안 이 수녀원 밖을 나갈 수 없었다 한다.

그림의 배경이 수도원이다. 왕권을 잡은 피터 대제는 정적 소피아 공주 측근을 한 명도 남김없이 처단한다. 소피아 친위대 1700여 명을 숙청하고 핵심 인물 세명은 공주 처소 바로 밖에서 처형한 후 그림처럼 창 앞에 목을 걸어놓았단다. 감히 하늘 아래 최고 권력, 피터 대제에게 덤빈 소피아의 교만을 잔인하게 꾸짖는 거다.

그렇게 손발이 묶인 채로 자신의 살점과 같은 지지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소피아 공주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피비린내 나는 권력 싸움에서 모든 것을 잃은 소피아 공주, 그 권력의 덧없음이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곧 미쳐 버릴 듯 메말라 보이는 소피아의 심경 표현이 너무도 생생하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이야기>(자유문고)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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