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고프에서 알렉세이 황태자를 문책하는 표트르 대제1871년, 니콜라이 게(1831-18940) 캔버스에 유채, 147 х 299 cm, 트레챠코프 미술관,모스크바

인간의 욕망은 권력의 최정점을 꿈꾼다. 많은 부분을 희생하면서까지 높은 곳에 있는 권력을 손에 넣으려 안간힘을 쓴다.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이들에게 이쯤에서 그만두고 주변을 돌아보라 충고해도, 인간의 욕망은 그칠 줄 모른다. 결국엔 천륜도, 인륜도 저버리고 끝도 모를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이 권력의 노예가 된 자들이 갖는 속성이다. 부모와 반목하고 형제끼리 칼을 겨누며 부부가 서로 죽이는 권력, 우린 그렇게 권력의 시녀가 되어 비참한 말로를 걷는 수많은 위정자들을 보아 왔다. 러시아라고 예외일까?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

그것도 고문을 해 죽였단다. 사고도 아니고 반역을 꾀했다 하여 황제로서 정적을 물리친 거다.

아버지가 일주일도 넘게 아들을 고문한 끝에 오스트리아 황제와의 모반 음모를 자백 받고 사형을 선고한다. 황제라는 권력은 부자간의 천륜도 저버리고 혈연의 정도 뛰어넘을 만큼 감정의 철벽을 두르게 하는 것 일까. 우리나라 역사에도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사건이 있는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은 천륜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 보다. 바로 러시아 판 사도세자와 영조다.

의자에 앉아 매서운 눈으로 아들을 노려보고 있다. 감히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하얗게 질려 애써 외면하고 있는 황태자, 알렉세이 페트로비치(1690-1718), 표트르 대제와 첫 번째 부인 로푸히나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로 왕위 계승자다.

어릴 적 자신의 어머니가 사치스럽고 나약하다 하여 아버지에게서 버림받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증오하게 되고 자연스레 대제의 개혁정책에 반하는 러시아 구 풍습들을 숭상하게 된다. 그런 왕자가 아버지의 눈엔 발끝의 티눈같이 성가신 존재였으리라.

아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조금도 없었는지 피터 대제는 아들이 죽은 다음날에도 스웨덴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폴바타 전투를 기념하는 파티를 열고 향연을 즐겼다 하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최고의 권력에 앉아 있는 그들을 지탱해 주는 힘이 그 무엇일까? 권력의 맛을 보면 인간의 기본 감정이란 것이 마비되는 것일까?

바닥에 나뒹구는 서류를 보니 아버지의 생각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의 부족함을 나무라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황태자 알레세이는 유약하고 내성적이며 러시아 정교에 심취한 인물이었다 한다.

그림에서도 왕자는 어딘지 모르게 병약해 보인다. 그에 비해 피터 대제에서 뿜어 나오는 풍채는 당당함을 넘어 공격적이다.

니콜라이 게의 독특한 화풍, 모델의 대조적 표현을 통해 주제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그림에서 대제와 황태자는 모든 면에서 비교된다. 한쪽은 병약하고 다른 한쪽은 힘이 넘치고, 한쪽은 외면하고 한쪽은 노려보고, 한쪽은 서있고, 한쪽은 앉아 있다.

이 모든 대립적 구도가 체스 판 모양으로 퍼져나가는 바닥과 함께 그림의 극적 긴장감을 더 해주고 있다. 작가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 둘을 그려내고 있지만 어쩌면 작가의 객관적 표현이 그림 내면의 잔인한 운명을 더욱 부각시키는 거 같아 안타까워질 따름이다.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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