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돈 많은 부모가 돌아갈 땐 죽어가는 부모 눕혀두고 자식끼리 재산 싸움에 바쁘다기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최소한 그 지경까지 갈 일은 없겠다 싶어서요. 그럴만한 돈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렇게 확고부동한 숫자들 앞에서 인간성을 실험당할 일 없이 그저 사랑, 은혜, 추억과 같은 아름다운 단어를 이불처럼 덮으며 조용히 부모님을 보내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 또한 행운이라면 행운이겠다 싶었습니다. 유산 대신 형제지간의 우애와 가정의 화목을 얻었으니 그 또한 적당한 가난이 가져다주는 행복이라고요.

그런데 막상 부모가 아프시니 유산이 아니어도 의견 충돌할 일이 너무도 많더이다. 세상 모든 일이 당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요즘 와서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긴 휴가를 다녀온 사이에 친정집에 사고가 났습니다. 아흔이 된 엄마가 동네 외출을 하셨다가 넘어져 대퇴 골절이 되신 거죠. 어머니는 언제나 씩씩하게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버지와 둘이 잘 살고 계신 편이었어요.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엄청난 돌봄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었지요. 수술과 입원, 재활을 위한 요양시설, 가정간호, 장기 요양, 응급실 입원 그리고 퇴원 등등이 반복되는 제 친정집은 몇 달 동안 비상시국이었습니다.

한 부모가 열 자식은 돌볼 수 있어도, 열 자식이 한 부모를 못 모신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번에 좀 더 그 양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꼭 부모의 사랑에 자식의 애정이 못 미친다는 뜻만은 아니었어요. 한 부모는 열 자식을 돌보는 문제에 관해 사령탑이 하나잖아요.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돌보는 문제에 열 개의 사령탑이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 돌봄에 관해서 서로 간에 온도 차이가 생겼습니다. 민주적인 집안 구조에 따라 모두의 의견이 존중되다 보니 각각의 제안과 선택도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했습니다. 거기에 이 모든 것을 건너뛰고 우선권을 발휘하려는 아버지의 입김까지 한 자리 차지하니 친정집은 정말 난리도 아니었지요.

이 과정에서 저는 마치 우리 집안이 하나의 협동조합이 아닐까 하는 착시 현상까지 들었습니다. 마침 형제도 꼭 다섯이어서 엄마학교협동조합과 수시로 오버랩이 되었어요. 누구나 발언하고 표현하며 중지를 모으되 그 과정에서 일을 더 하는 사람과 덜 하는 사람이 서로 부대낌 없이 이해하고 노력하는 장면들이 마치 협동조합이 구현해내야 하는 관계성과 너무도 흡사하더군요. 이런 일을 연습하려고 협동조합을 만들었나 생각이 될 정도였습니다.

가족, 가족은 정말로 무슨 관계이며 조직일까요? 어떻게 보면 비영리단체인 것 같다가 또 협동조합 같기도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죽을 때까지 서로의 관계 속에 생명을 걸어놓고 부대끼며 살다가 죽어가는 것일까 싶기도 하고요. 휘파람 불며 허이허이 꿈결같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제 앞에 벌어지게 된 또 하나의 거대한 인생 파노라마입니다. 이 와중에 저는 하는 일도 별로 없이 속을 끓이고 애를 태우느라 몇 년 동안 뜸했던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부디 마음 조심, 몸조심 하시기를!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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