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엄마학교협동조합에서는 매달 한 번씩 일정한 주제를 정해 ’이야기파티‘라는 걸 엽니다. 파티라면 화려한 치장과 더불어 음식과 술을 중심으로 하는 질펀한 잔치가 연상되지만, 우리가 하는 이야기파티는 오로지 ’이야기‘ 자체가 그날의 메인 요리입니다. 물론 십시일반 한 접시씩 먹을 것을 들고 모이기 때문에 저절로 조촐한 식탁이 차려지긴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파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다달이 정해놓은 주제를 가지고 함께 모여서 우리끼리 나누는 이야기지요.

거창한 사람을 부르지도 않고 일정한 형식도 없어요. 특별히 더 사람을 모으려고도 하지 않고요. 그냥 정해진 시간에 자유롭게 만나, 살아가면서 궁금했지만 평소에는 다른 대화에 밀려서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주제를 일 년간 미리 정해놓고 하나씩 이야기로 나누는 겁니다. 어떻게 아이, 남편, 친구와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냐고 하는 각자의 비법에서부터 어떻게 시간, 돈, 건강을 관리하느냐는 각자의 이야기를 말이에요. 지난달은 ‘어떻게 살림을 즐기나요?’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인 사람마다 이야기가 다채로웠어요. 어떤 분은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살림의 비경제성에 대해 듣고 자라면서 아예 살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별 가치를 느끼지 못했대요. 그래서 되도록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 집안일을 하는 사람을 고용하려고 했다더군요. 반대로 저는 살림하는 재미를 잘 느끼는 편이었는데 그마저도 나머지 가족들이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으니 억울해서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이렇게 ’일‘에 대한 가치는 은연중에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판단과 평가에 의해서 좌우되는 부분이 많이 있어요.

살림을 즐기기 위해 컴퓨터 업무 중간중간 머리도 식힐 겸 가사노동을 끼워 넣는 징검다리 방식을 쓴다는 프리랜서도 있었고, 살림이라는 의미 자체를 확대해석해서 ’살리는 일‘이라는 의미로 더 가치를 부여해보는 방법도 있었어요. 아주 작은 질문 하나에서 출발했는데도 그날 모인 사람들은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재미있는 의견을 다양하게 주고받았습니다. 저는 이런 국면 자체가 어떤 멋진 강의보다 더 배울 게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재미있는 수다 한 판처럼 즐거우면서도 이를 계기로 생각거리가 많이 생기거든요.

오늘도 그날 이야기하지 못했던 ’살림을 즐기는 저만의 비법‘이 새록새록 생각나지 뭐예요. 그건 바로 제가 가진 살림살이를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추억이 있는 물건들로 하나씩 채워나가는 거예요. 최신식 최고급을 아무리 구비해도 결국은 또 어느새 구형이 되어버리는 세간살이. 비싸고 좋은 것을 사려고 안달하다가 차라리 그런 에너지를 절약해서 나만의 이야기를 축적하자는 쪽으로 선회했어요. 생각할수록 기분 좋은 여행길에서는 하다못해 비누 한 장이라도 기념할만한 걸 사 들고 오기로요. 집 앞 슈퍼에도 있을 먹을거리도 좋은 기분을 누렸던 곳에서 사오는 편이에요. 살림할 때마다 하나하나 다시 쓰고 먹고 만지면서 즐거웠던 추억들을 소환하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떤 비법들이 있을까요? 그런 게 매일매일 궁금하답니다.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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