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수년 전 ‘엄마 은퇴’를 위해 출간했던 『엄마난중일기』가 새로운 인연을 몰고 왔었다. 나에게는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엄마가 감정의 동요를 겪어가며 각자도생의 사회를 건너고 있었다. 누구는 맘충이 되어, 누구는 경단녀가 되어, 누구는 취업맘으로, 누구는 전업맘으로 모두 엄마라는 이름을 힘겹게 쥐고 있었다. 그런 엄마들이 함께 모여 자기 성장과 사회적 연결을 위한 학교를 세워보자고 했다. 십년 전 모임 공간을 시작할 때의 열정이 스멀스멀 다시 피어올랐다. 매주 만나 막연한 생각을 정리하며 준비한 지 꼬박 1년, 그렇게 마침내 ‘엄마학교협동조합’이라는 울타리를 세울 수 있었다.

새로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처음 마음을 명함에다 새겼다. ‘우리는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엄마를 돕는다’라고. 천신만고 끝에 엄마 은퇴를 하고 나서도 여전히 엄마라는 이름 안에 서 있게 된 이유다. 훨훨 날아다니기에는 아직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무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은연중에 엄마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회복시켜야겠다는 생각을 지녀왔던 까닭이다. 살아가며 부딪히게 되는 모순을 놓지 않고 쥐고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이렇게 자연스럽게 소명을 만나는 기회가 됐다. 그 방향성을 외면하지 않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헌신하고 있다.

그렇게 지난 몇 년간 엄마 은퇴를 하고 나서 나의 삶은 훨씬 자유로워졌다. 혼자 생각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기도 하고, 강의도 하고, 협업도 하면서 세상과 어울리는 재미를 새록새록 배우고 있다. 비록 옛날보다 젊은 기운이 쇠하고, 주름과 흰머리가 늘고, 뱃살이 두둑해진 여자 사람이 되었지만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놓여나니 그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이제야 조금씩 ‘나’에게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만나는 사람이 다양해질수록, 그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수록 내가 포용할 수 있는 세상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나만의 억울함에 휩싸여있을 때는 미처 남들 입장까지는 헤아려보질 못했다. 엄마라는 짐을 벗고 나니 그제야 남편도, 딸도, 아들도 인생을 함께 걷는 동료로 보이기 시작한다.

돌아보니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참 어설픈 길을 많이도 헤쳐 왔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때마다 일의 진퇴를 결정하고 생명의 울림에 따라 돌파구를 찾아 헤맸던 시간들. 그렇게 지나온 순간이 연결되면서 이제는 하나의 궤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게 결국은 한 사람의 역사가 되는 게 아닐까. 『엄마난중일기』 이후에도 꾸준히 나만의 후속편을 위해 오늘을 살고 있다. 앞으로는 이처럼 자기만의 스토리를 잘 완성하기 위해 고민하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면 어떨까 싶다. 삶이 차곡차곡 쌓여 이야기로 남겨져 글이 되고 책이 되었다가 다시 다른 사람과의 인연을 불러내고 그게 다시 이야기로 쌓이는 무한 반복의 연장 선상에서 나는 얼마나 더 다채로운 사람들을 여행하게 될지 은근히 설레기도 한다. 이왕이면 되도록 그 기록을 아름다운 스토리로 완성하고 싶어서 잘 살아가려고 정성을 쏟는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나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작가로서의 욕심일 것이다. 지금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만나는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던가.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출판 섬 대표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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