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오래전에 인연을 맺었던 지인이 요즘 기본소득 운동을 한다며 근황을 알려왔다. 의외였다. 내가 알던 그는 목소리가 작고 수줍음도 많은 사람이었다. 하긴 그 옛날부터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도 사비를 털어 어린이도서관을 설립했던 그였으니 건전한 사회발전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을 법했다.

기본소득.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계기로 좀 더 생각을 이어가게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세상이긴 했다. 조만간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하고 있지만 솔직히 썩 반갑지는 않았다. 재원 마련을 위해 나같은 중산층은 또 쥐어짜일 게 뻔하니까. 분명 어제보다 나아지는 사회 안전망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도처에 보이는 불필요한 누수현장을 발견하게 될 때마다 남몰래 속이 쓰린 것도 사실이다.

모두가 좋아지는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얼마만큼의 확실한 나의 현재를 양보해야할지 가끔 두려움마저 생기긴 한다. 과연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느냐도 여전히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엄두가 나지 않는 사회적 이슈는 그래서 늘 마음만 시끄럽고 결과는 탁상공론에 전시행정이었던 기억만이 선연해졌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로 봐서 가까운 시일 내에는 당연히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봤던 기본소득이 코로나 정국을 맞아 요즘 급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재난 기본소득. 사안이 위중한 만큼 재원 확보 방안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와중에 지금 꼭 필요치 않았던 예산 항목을 과감히 정리하여 활용하겠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불행 중 다행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이 세수를 무조건 늘리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본소득은 애초 사람으로 태어나 자본주의 시장에서 생존하는데 필요한 기본 경비를 지원함으로써 최소한 인권이 돈 때문에 박탈되는 것을 막자는데 있다. 있는 사람 돈 거둬 없는 사람 나눠주는 소득 재분배처럼 편리하게 생각하지 말고 돈벌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다시금 세세히 정리해보면 좋겠다.

기본소득이 도입되고 나면 생계를 핑계로 버젓이 행해지는 같잖은 일거리를 하나씩 정리해나갈 길도 생긴다. 세상에는 차라리 노느니만 못한 일도 돈벌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유지되곤 한다. 반면 꼭 필요한 일이어도 경제성을 입증할 수 없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있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일들을 하나씩 되살려 나가는 작업을 병행하면 어떨까.

이참에 아이를 낳아 돌보고 가정을 보듬는데 전념해온 엄마들을 위한 기본소득도 강력히 촉구하는 바다. 가족도 엄연한 사회공동체다. 이 기본단위가 개인의 이기심과 혈연으로만 뭉쳐진다고 여기는 것도 착오다. 가족이 어떤 형태로든 경제 논리에 잠식되지 않아야 제 자리를 잡고 사회도 비로소 건강해질 수 있다. 지금도 주객 전도된 가정에서 수많은 엄마 아빠가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로 빚어진 위기 속에서 생각도 쾌속으로 질주하게 되길 빈다.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50이면 그럴 나이 아니잖아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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