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부정당제재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 사진=소셜타임스 DB
지난 6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부정당제재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 사진=소셜타임스 DB

[소셜타임스=김승희 기자]

공공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에서 부정당제재를 받은 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부정당제재는 계약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한 사업자는 일정 기간 입찰 참가를 제한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조달업체로서는 사실상 영업정지나 마찬가지다.

최근 3년간 부정당제재 업체를 분석한 결과 최근 1년간 부정당제재 업체가 가장 많았고,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지방계약법 시행령)을 적용받는 입찰 건이 67.5%에 달했다.

2019년 7월 1일~2020년 6월 30일 부정당제재 업체는 516개로 1년 전 같은 기간 보다 4.9배 증가했고, 2년 전 같은 기간보다는 28.6배가 폭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3년간 부정당제재 업체는 2019년 7월 1일~2020년 6월 30일 516개, 2018년 7월 1일~2019년 6월 30일 106개, 2017년 7월 1일~2018년 6월 30일 18개에 불과하다.

[최근 3년간 부정당업체 수]

부정당업체로 지정된 80건의 부정당제재 사유를 분석한 결과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 제1항에 의한 부정당제재가 26건이었으며 지방계약법 시행령 제92조 1항에 의한 제재가 54건에 달했다.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따른 제재는 계약 불이행 21건으로 80.7%에 달했다. 부정 시공 1건, 발주기관 승인 없이 하도급한 경우 2건, 납품 지연으로 인한 계약 해지 1건 등이다.

지방계약법 시행령에 따른 제재의 경우 계약 의무 불이행이 45건으로 전체 제재 사유의 56%를 차지했으며 서류 위‧변조나 거짓 서류 제출 7건, 계약조건 위반 3건, 공동계약 미이행 1건 순이었다.

부정당제재가 가장 많은 ‘지방계약법 시행령에 따른 계약 불이행 사유’는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계약을 체결한 후 계약 이행을 하지 않은 경우다.

부정당 제재의 계약 종류별로는 물품구매가 27건으로 가장 많았고, 용역 20건, 기타 20건, 공사 13건 순으로 나타났다.

부정당제재는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 등 계약의 당사자가 계약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 입찰 참가 자격을 1개월~2년 제한한다. 이런 제재 때문에 해당 업체는 제재 기간 동안 영업을 할 수 없게 된다.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받는 기간에는 해당 기관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모든 공공조달 시장의 입찰과 수의계약 참여가 모두 제한된다.

게다가 입찰보증금도 납부해야 한다. 채무불이행과 금융질서 문란자, 부정당업자 제재 업체를 제외하고 본 입찰에서 입찰보증금의 납부는 면제한다.

부산시 남구가 발주한 입찰 건 '부산용호만 저서환경 복원사업(섬유돌망태)'의 공고문.

지난 6월 '부정당제재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황창근 홍익대 교수는 부정당업자 제재의 문제점으로 제재 수단의 경직성 및 비효율성, 제재 사유의 불명확성, 제재 효력의 광범위성, 제재의 중복성 등을 지적했다.

율촌의 정원 변호사는 “부정당제재는 사실상 조달 시장 퇴출을 의미하는 가혹한 처분이지만 현재 기계적·획일적으로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코로나19가 몰고 온 국가 경제적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해 부정당제재 업체에 대한 행정 사면 단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달 업체들은 현행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의 제재 사유 및 기준이 다른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적격심사 서류 미제출 시 제재 여부와 낙찰 전 입찰 포기서 제재, 제재 기간이 다른 게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 제1항 마호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이행 능력의 심사에 필요한 서류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출하지 아니하거나 서류 제출 후 낙찰자 결정 전에 심사를 포기한 자”에 대해 부정당업자로 지정해 제재하던 것을 2019년 9월 17일 삭제했다.

이로써 적격심사 입찰의 경우 적격심사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부정당업자로 지정되지 않게 됐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 제1항 마호에 의해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이행 능력의 심사에 필요한 서류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출하지 아니하거나 서류 제출 후 낙찰자 결정 전에 심사를 포기한 자는 부정당 제재를 받았다.
2019년 9월 17일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 제1항 마호가 삭제돼 현재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지방계약법 시행령에서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조달 업체가 숙지하지 못해 지방계약법이 적용되는 입찰에서 제재를 받는 경우가 많다. 지방계약법령에 따른 부정당제재가 67.5%에 달하고 계약 의무 불이행이 56%를 차지하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아 보인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지방계약법을 적용하는 입찰 공고문에 부정당제재를 경고하는 문구를 게재하기도 한다.

인천광역시가 입찰 공고문에 게시한“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거나 낙찰자 결정전에 심사를 포기하는 경우 부정당업자 제재 사유에 해당된다”는 문구는 지방계약법을 적용하는 입찰 공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부산시 남구의 경우 입찰 건 공고문에 “지방계약법 제31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92조 위반 시 조달청장으로부터 부정당업자의 입찰참가 자격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2019년 9월 17일 국가계약법 시행령이 개정되기 전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적격심사 서류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부정당제재를 받았기 때문에 조달업체들은 매우 신중하게 투찰했다. 부정당제재를 받을 경우 영업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한 조달업체 대표는 “시행령이 개정돼 적격심사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투찰한다”며 “가격 조사를 하지 않고 투찰한 후 1순위가 되어도 납품이 어려울 경우 심사 서류를 내지 않는 식”이라고 고백했다.

예전에는 적격심사 입찰의 경우 1순위가 심사 서류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1순위는 부정당 제재를 받게 되고, 2순위가 심사를 받은 후 낙찰되는 식이다. 그러나 시행령 개정 이후 1순위가 심사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수 백 명의 투찰자 모두 낙찰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조달청 계약 담당자는 “법령 상 ‘적격심사 서류 미제출 시 불이익’ 조항을 없앤 것은 더 많은 조달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게 규제를 푼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령이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부정당 제재 사유 및 기준도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검토해 조달 업체들의 불이익과 수요기관의 행정낭비는 없애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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